본문 바로가기
설교/설교문

소망(구원)을 이루는 환난(患難)

by 다바르아마르 2020. 6. 22.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환난은 근심과 재난(근심 환, 어려울 난)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도 언제나 유대주의자들의 핍박 속에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 곧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생명을 건네주신 그 사건의 의미를 소상히 밝힘으로 로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성경의 사건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게 될 때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읽은 분문에서 성도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으로 받으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고 말합니다. 자신에겐 없었던 믿음을 갖게 된 자가 그 믿음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 곧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이며 진리입니다.

성도의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진 생명의 열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획한 것이며 그분의 영원한 사랑과 창조목적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2절 이하를 보면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고 말합니다. 같은 내용을 또 다른 각도에서 부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고 그들은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고 팔복에서 말합니다.

천국 곧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사모하고 받게 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은혜에 들어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 속에서 진리 곧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때 마치 지성소 법궤 위 속죄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빛이 밝히 비추어 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우리들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계획을 언약으로 알게 될 때 우리들은 그분의 영원한 사랑을 경험하며 한없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될 때 그것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계획하신 것이고 그 일을 완성해 가시는 과정을 우리가 인생과 역사 속에서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주를 향한 열심보다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 언약을 항상 바라보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절과 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인생과 역사 속에서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 지를 설명함으로 로마의 성도들을 안위하고 있습니다.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들이 직면한 것은 환난이었습니다. 근심과 재난이 항상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근심은 마음이 겪는 것이라면 재난은 밖으로부터 오는 핍박이었습니다.

 

로마의 성도들은 항상 환경과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마음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환난이 근심과 어려움이라면 환란은 근심과 혼란스러움입니다. 혼용해서 써도 무방하리라고 봅니다.

 

오늘 본문은 환난 속에서 성도는 소망 곧 구원이 이루어짐을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환난은 헬라어로 들립시스라고 하는데 압박, 괴롭히다, 모여들다, 에워싸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환난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곤 합니다. 공교롭게도 들립시스라는 말이 트라우마 곧 상처라는 말과 같은 어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통하여 겪는 어려움은 자칫 잘못하면 나 자신의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성향으로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가난한 마음 곧 주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우리에게 없었던 경향성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인내인 것 같습니다. 인내는 우리 스스로 견디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인내라는 단어는 휘포모네라고 읽는 데 휘포는 무엇무엇 아래서 라는 뜻이고 모네는 머무르다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안에서 또는 아래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아래에 머문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머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환난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아래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바로 이때에 연단을 받게 됩니다.

연단은 도키메라고 하는데 이는 도케오라는 것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도케오는 생각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환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아래 머물며 생각 즉 묵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른 말로 하면 그분의 언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믿음이 강화되면 그것이 확신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나오는 소망 즉 엘피스라는 말이 소망이라고 번역이 되어있지만 확신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환난이 소망을 이룬다는 말은 / 상처가 날 수밖에 없는 연약한 나 자신이 환란가운데에서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물게 되어 날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소망인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covid 19 으로 인하여 아무도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대단한 염려와 근심이 마음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주변의 보이지 않는 시선이 교회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봄으로 흔들리지 않는 사명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환난은 언제나 있는 것이며 이 환난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이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환난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며 내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조명가운데 생각하게 하여 내게 완성될 구원을 확신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이기게 하신다)

 

벧전1:6-8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존재적 완성)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존재적 완성)

 

기뻐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험과 근심을 통과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보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믿음을 가진 자의 특징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이 말씀 안에서 다시한번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을 확인하며 위로를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