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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설교문

중앙교회가 믿고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과 신학

by 다바르아마르 2020. 5. 25.

1: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 성경은 66권이 아니라, 한권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의 책입니다. 이 계시는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점진적으로 확장되었고, 요한 계시록을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계시는 완전히 종결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지는 인간의 양심, 자연의 질서를 통해서 배우는 일반계시(자연계시),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로 기록된 특별계시(성경계시) 외에는 없습니다.

 

2. 성경은 율법, 도덕, 윤리 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구속사역을 설명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읽고 해석하면 배나 지옥 자식을 만들게 됩니다. 문자 층 이면에 있는 의미 층을 이해해야 합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있는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필요한 역사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3. 성경을 한글 성경으로만 읽고, 묵상하고, 설교하면 그 진의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조직신학에 성경의 명료성이 있는데, 그것은 원문을 근거로 할 때만 가능합니다. 번역의 과정 속에 오역이 있고, 성경 문자의 의미도 시간이 지날수록 장사를 하느라고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4. 지역교회에 있는 여러 직함은(원로목사, 담임목사, 부목사, 장로, 권사, 집사)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지역교회의 형편에 따라 운영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성경의 진의에서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이 말하는 장로의 의미와, 교회에서 직함으로 주는 장로는 전혀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칼빈과 목사들의 과오가 큽니다.

 

5. 지역교회의 리더인 목사의 직임은, 무당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는 영매로서의 중재자가 아닙니다. 목사는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실 때 그 성경을 해석할 교사도 함께 주셨습니다. 우리의 참된 목사는 예수님뿐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라고 너스레를 떠는 인간들은 거짓교사, 율법교사일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 교사인 지역교회 목사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잘 가르쳐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사는 성경만 가르치는 학원 강사가 아닙니다. 진리의 씨를 전하는 아비와 같은 자입니다. 복음은 그렇게 생명으로 전수되는 것입니다.

 

6. 도덕적 성화는 없습니다. 예수 믿고 그 성품이 변한 사람 본 적 있습니까? 다 윤리와 도덕으로 포장한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십자가 뒤에 숨게만 할 뿐입니다. 면목없이 구원 받는 것입니다. 당당한 구원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끄럽게 구원 받습니다. 혹 우리가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 속에 거해도 하나님은 정당하시고, 우리는 죄인일 뿐입니다.

 

7. 천국과 지옥은 카이로스의(영적인 시간) 시간 속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크로노스의(물리적인 시간) 시간에서 경험하는 천국과 지옥은 우리 감각기관의 인식에 불과합니다. 심리학적 용어로 인지부조화 입니다. 지옥의 본질은 인간의 자기 확장 욕구로 가득한 욕망의 무저갱입니다. 구원은 그곳에서 나와 하나님의 통치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8. 피조물이 하나님을 감지하거나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네, 주님을 위해 헌신하네... 그런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오직 단하나, 열의 계명을 진리로 완성하여 안식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에스카토스 코드란테스(사각변의 마지막 변=성전)로 완성하여 지옥에 그 사랑의 값을 갚아야 합니다. 그것을 갚지 않으면 지옥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진리는 레마로 흘러야 영이 되고, 하이 네페쉬 하야가 (살아있는 존재)됩니다.

 

9. 당연히 천국의 차등상급 따위는 없습니다. 더 이상 상급 놀이터에서 놀지 않아도 됩니다. 상급으로 성도들의 헌신과 돈을 요구하는 목사들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사기꾼입니다.

 

10. 십일조는 번 돈의 10분의 1이 아닙니다. 더 이상 세금 전 십일조를 내느냐, 세금 후 십일조를 내느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열의 하나, 그것이 에스카토스 코드란테스입니다. 예수가 영으로 우리 안으로 들어오면 그것이 풍성한 양식이며, 십일조입니다. 그러면 요셉처럼 기근의 땅에 양식을 나누어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 진리를 깨달아 사랑으로 나누어주는 것이 성도와 교회의 사명입니다. 물은 흘러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 가지고 있으면 금새 썩습니다. 십일조는 내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양식을 진리로 깨달아 사랑으로 담지하고 있으면 그것이 십일조입니다.

 

11. 예수는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살해의 대상입니다. 아벨로 죽어야지 셋으로 부활합니다. 내가 그 육의 예수, 율법의 예수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문 불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가 놋 뱀이 되어 언약의 기둥에서 죽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 속에 불뱀의 해독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해독제는 예수가 내 속에서 죽어야지만 해독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 뱀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여전히 섬김의 대상으로 모시고 있는 종교인들은 불뱀의 독에 죽어가고 있는 사형수입니다. 그가 살길은 빨리 해독제를 맞는 것입니다. 그 해독제는 뱀 독에서 나옵니다.

 

12. 구원의 확신이란 있으나 마나한 인간의 감정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다 구원 받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구원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구원은 나의 확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은총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시면 감사할 뿐입니다. 구원해 주시지 않으신다고 해도, 그래서 내가 영원한 지옥에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고 해도 나는 어떠한 요구도 못합니다. 다만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할 뿐입니다.

 

13. 이 땅에 인간의 헌신과 노력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인간의 의를 부추기는 사단의 속삭임입니다. 이 땅은 불타서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가 아니라, 하늘이 된 성도 자신입니다. 그들이 하늘의 별이고, 계시의 담지자들이며, 진리가 영이 되어 자신의 마음이 된 그리스도들이다.

 

14. 성경이 말하는 귀신들림이란, 혼령들이 인간 속으로 들어 온 것이 아닙니다. 악한 말, 거짓 된 말에 사로 잡혀 있는 인간의 영적 어두움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은 귀신을 내어 쫓는 축사사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 참된 말이 인간 안으로 들어가면 악한 말이 사라집니다. 그게 구원이고 안식이며 평강입니다.

 

바알에게 무릎 끓지 않는 칠천인

이상은 중앙교회가 성경을 통해서 믿고, 고백하고 선포하는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내용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신학적 근거를 토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진리를 전파하며, 영혼을 가르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시고 숙지하여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는 거짓된 가르침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이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칠천 인처럼 선명하고 바른 진리를 담지하여 그것을 사랑으로 흘려주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