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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기도 말씀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을

by 다바르아마르 2020. 2. 14.

 

 

또 너를고발하여 속옷(citwvn)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iJmavtion)까지도 가지게 하며 (5:40)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팬티를 달라고 하는 변태에게 외투까지다 주어라는 박애 정신을 가르칠까? 우리가 텍스트에 집착하면 윤리/도덕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일반 종교와 다름없는 종교적 가르침일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모든 문자에는 사전적 의미가 있고, 그 사전적 의미의 결국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그 원리를 담고 있다. 그래서 모든 율법/계명에는 그리스도가 담겨있고(5:39), 따라서 율법에서 그리스도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럴 때 그것은 구원의 원리가 되어 우리를 살리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가르치기 위한 예수의 독특한 강조 화법이다.

 

오른 뺨을 때리거든 다른 뺨을 돌려대라! 는 말씀은 한 마디로 수치를 당하라는 말이다. 예수는 그래서 그 말씀을 이루셨고, 우리 또한 십자가 죽음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속옷 겉옷도 오른 뺨, 다른 뺨 개념을 좀더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22: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22:27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예수 당시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보통 속옷과 겉옷 한 벌씩만 소유하고 있었다. 겉옷은 외투가 될 뿐 아니라 밤에 덮고 잘 유일한 담요 구실을 했다. 이것을 잘 알고 있을 예수가 속옷을 (고발하여) 저당 잡으러 오는 이에게 겉옷까지라도 내어주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속옷을 뺏는 이에게 겉옷도 주라는 말이다. 오른 뺨, 다른 뺨을 맞는 것은 수치중에 수치고, 옷을 뺏기는 것도 모독 중에 모독이다. 그런데 그것을 다 내 주라고한다.

 

[ 5:15] 예수께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iJmativzw)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거라사 광인도 정신이 온전해지자 무엇을 입습니까? 옷을 입었다라고 나오는데 히마티조는 히마티온에서 유래한 말로 겉옷을 입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옷을 입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 어디에서는 옷을 버렸다고 나오고 어디에서는 입었다로 나온다. 성경에서 최종적으로 입어야 할 옷을 흰 옷이다. 이 흰 옷은 깨끗한 진리의 말씀을 상징하는데 이기는 자, 성도들이 입을 옷이 바로 흰 옷이다.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그러므로 꼭 입어야 할 옷이 히마티온인데 예수는 그 옷을 다 주라고 한다. 누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고발하는 자에게…, 고발하다라는 동사는 크리노(krivnw)이다. 분리/판단하다라는 뜻이다. 분리/판단하는 자들은 어떤 옷으로 가지고 있는가? 대표적인 분리주의자가 바리새인이다. 그들은 겉옷을 어떻게 입었는가?

 

히브리인들이 입고 다니는 겉옷은 613개의 율법을 상징하는 옷단 술(찌찌트)이 달려 있었다. 이 옷단 술을 달고 다니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아침과 저녁에 쉐마를 낭송할 때 반드시 이 옷단술이 달린 겉옷을 두르고 낭송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겉옷이란 속옷보다고 더 중요한 의미를갖고 있었다. 히브리인들에게 겉옷은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겉옷을 저당잡히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목숨을 걸고 겉옷을 지키려고 했고, 어느 누가 요구하더라도 절대 내어주지도 않고, 저당으로 받지도 않으며 차라리 속옷을 저당 잡게 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는 옷의 개념이었다.

 

 10:50 소경이[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소경은 예수를 따르는데 자기 겉옷을 내어버린다. 이것이 바로버려야 할 옷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거짓 율법의 옷이요, 바리새인의옷인 것이다. 그들이 바로 소경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613개로 분리해서 진짜 보아야 할 사랑은 보지 못하는 그들이 바로 소경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옷을 우리에게 어떻게 입혀주는가?

 

 19:23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citwvn)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19:24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22:18 내 겉옷(dg<B²)을 나누며 속옷(vWbl])을 제비 뽑나이다

 

이 옷을 누가 빼앗기는가? 바로 예수가 빼앗긴다. 어디에서? 바로 십자가에서 빼앗긴다. 따라서 옷을 빼앗긴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즉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옷을 입힌다.

 

호지 않는 옷은 원래 제사장이 입는 옷이다. 십자가에서 겉옷(히마티온)이 먼저 넘겨진다. 그런데군사들이 어떻게 나눠가지는가? 4부분으로 나눠가진다. 4는 동서남북4방을 뜻한다. 예수의 옷이 온전히 찢겨진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의 몸이 온전히 찢기어 온 세상에 나눠질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그런데 그것이 피 뿌린 옷이다. 피 뿌린 옷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 히마티온이다. 죽음을 통하여 입는 옷이 바로 우리가 입어야 할 흰 옷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입혀주는 옷이다.

 

 6:29 네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누가복음은 거꾸로 이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주라는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속옷, 겉옷을 율법과 진리라는 개념으로너무 도식화할 필요가 없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 눈에는 눈으로 고발(판단/분리)하는 자들에게, 그들이요구하는 옷은 필요없으니 다 주라는 말씀이다. 즉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것이다.

 

낡은 옷을 버려야한다. 그리고 새옷을 입어야 한다.

 5: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을찢을 뿐이요 또 새 []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우리 인간의 몸이 일종의 옷이다. 그런데 낡은 옷을 버리고 썩지않을 새 옷을 주는 것이 부활이다. 그런데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고전 15:54] 이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썩어질 육체를 먼저 주신다. 그것이 낡은옷이다. 그러나 나중 것은 썩지 아니하는 새 옷을 주실 것이다. 바로 육체를 벗을 때는 영광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하나될 것이다.

 

이 얼마나 복된 소식입니까? 먼저 낡은 옷을 버려야 한다. 차원이 다른 의를 위해서는 버려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는 그 분리의식을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달고 다니던 옷술이 달린 그 율법이라는 겉옷을 말이다. 그래야 차원이 다른 옷을 주는 것이다.

 

성전의 기명들은 쓸모없는 가시떨기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그들이 성물이 된 것은 그들이 금으로 옷 입혀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와 같이 가시떨기 나무같은 우리를 금보다 귀한 그리스도로 옷입히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차원이 다른 옷이다. 이것이 수치뒤에 입혀주는 옷이다. 이러한 새옷입고 하나님 나라를사는 하나사랑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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