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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기도 말씀

수치를 당함으로 진리를 세우다

by 다바르아마르 2020. 2. 12.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뺨을 맞는다는 것은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수치를 당한 자가 누구인가?

 

■뺨(yjl:3895).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 50:6)

 

[왕상 22:24]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대하18:23)

 

가나안의 아들 시드기야가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라는 뜻을 가진 미가의 뺨을 때린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입, 즉 진리를 전하는 선지자들이 주로 뺨을 맞고 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가의 사건은 예수께서 뺨을 맞음으로 예언을 성취한다.

 

이에(그때)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 26:65)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26:66)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 26:67)

 

미가가 그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고 예수가 맞음으로 완성한다. 뺨을 치다 할 때 나카라는 동사를 쓴다. 이것은 때려 죽이는 것인데 뺨을 때리는 것은 일종의 죽이는 것이다. 오른 뺨을 때리거든, 즉 예수께서 맞고 죽거든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면 왼쪽도 돌려 대며 라고 되어 있는데 원어는 또 다른 하나(a[llo")이다. 물론 이 말은 수치를 당하라는 말이다. 즉 예수가 맞고 죽은 것처럼 또 다른 하나인 너희도 죽으라는 말이다. 예수께서 나카 당한 것처럼 너희도 나카 당하라는 것이다. 돌려대라는 스트레포는 마음을 돌리다, 마음을 변화시키다. 마음을 바꾸다로 쓰인다. 다른 하나를 변화시키라는 말은 너희도 예수가 수치를 당한 것처럼 수치를 당하라는 말이다.  즉 회심의 개념이 있는 것이다.

 

strevfw(4762, 스트레포)

돌아서다, 변하다, 바꾸다.

 

맹세도 그렇듯 수치도 하나님이 당하는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연합한 자만이 그 수치를 당할수 있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호 포네이로스) 대적하지 말라(메 안티스테미)

 

악인을 대적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슨 말인가? 악한 자를 누가 대적하겠다는 것인가? 안티스테미는 부정을 뜻하는안과 히스테미가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스테미는 진리를 (수직으로) 똑바로 세우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안디스테미(ajnqivsthmi)는 무엇인가를 세우는 것을 반대하지 말라는 말이다. 즉 진리를 세우는데 반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자체가 진리를 대적하지 말라는 것이다.그런데 그 앞에 그 앞에 메(mhv)가 붙어 무엇인가를 세우는 것을 반대하는것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즉 진리를 세우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무엇인가? 호 포네로스, 즉 악한 자이다. 다시 말하면 악한 자를 진리로 세우라는 말이다. 그것이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말이다. 악한 자를 방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세우라는 말이다.

 

사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이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사망으로 태어난다. 그것을 죽은 자, 네크로스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고, 무덤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악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도 창조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이 선악과이다.누구나 선악과를 품고 태어난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선악과로 사람을 정죄하며 산다. 세상에는 의인이 한명도 없다. 친구인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소돔과 고므라를 위해 대화하는 장면을 살펴본 바 있다. 강청하는 친구 아브라함을 통해서 알려주는 것은 결국 의인이 한명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런 아브라함을 살리는 장면을 롯을 통해서 알려 준 것이다. 그래서 그 많은 나라, 성 중에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한 것이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은 사랑해주고 악한 사람은 미워하고 그런 개념이 아니라 사람은 전부다 원래 악한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악을 통해서 진리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집나감을 허락한다. 말하자면 악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아들이 깨닫는다. 나는 거지이구나! 그렇다 악을 통하여 선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선 자체만 있다면 인간은 선을 깨닫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의 의미이다. 선악과와 생명나무가 하나의 단수로 되어 있는 이유이다. 생명나무는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에서 찾는 것이다. 선악과에서 생명나무가 되는 것이다. 심판을 통하여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죄를 통하여 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맹세/언약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럴 때 율법이 복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악이 선으로 변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욥바에서 베드로가 생각하기에 부정한 짐승을 먹으라고 했다. 동물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생각이 더럽게 만든 것 뿐이다. 부정한 것을 정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이 일원론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시각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시각을 배우면 부정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럴 때 죄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하나님은 최초에 선으로 주셨는데 사람들이 악(라아:악하게 다루다)으로 해석한 것이다. 1장은 모든 것이 선하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선악을 품은 후 바다짐승은 용이 되어 버린다.

 

히브리어는 이러한 일원론 개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악이라는 단어가 그 반대의 뜻을 공유하고있다는 점이다.

 

1. [r(7451) = , 나쁜 = La(애굽의 절대신)와 발음이 똑같음.

2. [r(7452) = 소리(소음) = 악함.

3. [r(7453) = 형제, 이웃

 

결론: 악을 똑바로 세우는 것을 반하는 것을 하지마라! (부정+부정=긍정) =그 악으로 진리를 똑바로 세우라! 그 진리는 악으로 세우는 것이다. 악이 없으면 구원이 안된다. 악을 주신 의도()을 보아야 한다. 따라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개념은 악에는 악으로 라는 말이다. 그러나 너희는 악에도 선으로 갚으라는 말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악의 개념은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윤리적인 개념과 다르다. 종교에서 말하는 악의 대표가 누구입니까?

 

바로 사탄이다. 종교에서는 악의 대표 사탄을 상정해놓고 사탄과 끊임없이 싸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싸우면 싸울수록 사탄이란 존재는 커진다. 그러나 사탄이 아예 사라지면 싸울 일도 없는 것이다. 사탄조차도 하나님의 종이다. 즉 사탄조차 천사로 가는 도구이다. 그래서 내안에 사탄이 없어지는 것이다. 천사 밖에 없다. 그것을 사탄의 허리를 꺽었다고 하는 것이다.

 

현재 교회에서는 그 악(사탄)을 자꾸 대적한다. 그러나 그 악이 악이 될 수 없을 때 악에 대하여 대적할(안디스테미) 이유가 없어진다. 아예 사탄이 없어지는데 싸울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렇게 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지 아무리 사탄과 대적해보라!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 7: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 7:2] 남편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 7: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 7:4] 그러므로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그는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죽으셨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네크로스로부터/악인들로부터) 살아나셔서 다른 이로 오셨다. 그러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선악구조를 가지고 있는 악인인 우리! 스스로 수치를 당하지 못하기에 그가 수치를 당하고, 다른 것으로 마음을 변화시키겠다라는 것이다. 즉, 그는 죽으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심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맹세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서에 보면 여호와의 종이 수난받는(옳은 이가 빰을 맞는 말씀) 말씀이 나오는 것이다.

 

50: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53:6 우리는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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