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설교문

죄에 대한 바른 이해(깨달음)

by 다바르아마르 2020. 2. 1.

'죄'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땅의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의 욕망이나 욕심을 죄라고 생각하고 그걸 저주하고
그런 욕망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나를 한탄하는 것을
신자의 삶이며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죄를 헬라어로 '하마르티아'라고 합니다.

이 말은 '메로스'에서 온 말인데 이 뜻은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하’라는 부정어가 붙어서 ‘부분이 아니다’라는 뜻이 
'하마르티아' 즉, 죄라고 말하는 단어의 뜻입니다

그걸 해석해보면 하나님과 나는 서로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부분이라고 보신다는 겁니다.

이걸 '짝'이라고도 부릅니다.
짝과 짝이 만나서 짝의 상태가 없어지면 그걸 하나라고 
부르고 그러면 둘의 상태가 없어집니다.
그걸 죄가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부분이 아니다'라는 말이 하마르티아인데
서로가 서로에 대한 부분이 아닌 따로의 상태에
있으면 그걸 '죄' 라고 하니까

하나가 되면 '죄가 없다 죄가 용서받았다'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그럼 이런 하나로의 상태

하나님과 내가 부분과 부분으로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예수가 죽고 그리스도로 내 안에 오심으로
하나가 됩니다.

이걸 언약의 성취라고 합니다.
그 이후에 우리는 그냥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혹은 예수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습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이 교회에 임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부터
그렇게 부릅니다.

즉, 그리스도가 된 예수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된 예수 안에서 믿는 겁니다.

내 안에 오신 진리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

바로 그 상태가 믿음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언약이란 '내가 네 안에 들어갈거야' 이것입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 즉 그리스도의 시대입니다.
이미 성령이 오신 이후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에게 그 성령이 도래하는 것은 각각 다르지만
어쨌든 성령의 시대여서 그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과 내가 다시 말해 하나님은 진리시니까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되면
그걸 언약의 완성이고 죄가 사라진, 죄가 없는
의의 상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덕 윤리적으로 깨끗하게 사는 것을 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죄의 용서라는 단어를 '아피에미' 라고 쓰는데

이건 '멀리 보내다' 이런 뜻입니다. 
부분을 멀리 보내고 하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가 되자 부분, 짝이 멀리 가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짝과 짝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죄니까

그게 멀리 가버렸다. '아피에미'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개념이고 죄용서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도덕과 윤리적 죄, 인간 욕망의 죄를 성경이 말하는 죄라고 여기고

그걸 미워하고 그러한 자기를 한탄하는 것은 
불교나 타종교의 죄관과 똑같은 것이고
그런 죄의식과 싸우는 것은 불교의 참선이나

자아절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를 만들려고 십자가 지고 죽고

그리스도로 교회 안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죄를 멀리 보내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죽음의 목적입니다.

이 죄와 죄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성경적,

하나님적 개념을 가져야

진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를 
나의 것으로 내 안의 것으로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알아 늘 진리의 기쁨을 가지게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 설교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을 안다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다  (0) 2020.02.09
우상숭배  (0) 2020.02.01
올바른 지식  (0) 2020.01.27
진리(언약)를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0) 2020.01.22
죽음이란 무엇인가?  (0) 2020.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