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란 천국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반대인 지옥에 대해 알아보았다. 무엇보다 천국과 지옥은 장소 개념보다는 존재 개념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천국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그렇다면 죽으면 천국은 없다는 말인가? 이렇게 묻는다. 지금 여기에 있듯이 천국은 영원히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사후 천국과 지옥일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다루려면 우선 부활이라는 것을 먼저 다루어야 한다. 부활을 이해해야 사후 천국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 말한다. 그래서 예배 때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오며>라는 사도신경을 고백한다. 이것은 액면 그대로 예수의 재림 때에 죽은 육체의 몸이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는 고백이다. 이러한 고백에는 죽음을 “육체의 죽음”으로 이해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따라서 우리는 부활을 논하려면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을 먼저 알아야만 한다.
마 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이때 죽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분명히 육체적으로는 살아있는 자들이다. 이때 죽은 자들이 말 그대로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이라면, 어떻게 시체가 시체를 장사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이때 죽은 자들은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죽음은 “몸이 죽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혼의 죽음”이다.
겔18:4 모든 영혼(vp²n)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vp²n)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vp²n)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af;j)하는 그 영혼(vp²n)은 죽으리라
영혼이라 번역되어 있는데 원어에는 네페쉬이다. 즉 혼이다. 혼(네페쉬)이 죽으면 네크로스가 된다. 네크로스는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영이 죽었다 살았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영은 죽고 살지 않는다. 혼이 죽고 산다. 그래서 구원의 대상은 네페쉬이다. 헬라어로는 푸쉬케이다.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yuchv)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래서 영의 구원이라 말하지 않고 혼(푸쉬케)의 구원이란 표현을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바로 푸쉬케, 네페쉬의 죽음을 말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살아있는 혼이 있고, 죽어있는 혼이 있다. 살아있는 혼은 “영”이신 하나님을 안다. 이 살아있는 혼을 성경에서는 ‘산 자’라고 한다.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래서 예수께서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라고 한 것이다. 몸의 죽음이라면 이 말씀은 허구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한 죽음은 바로 혼의 죽음을 말한 것이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영”으로 인하여 “혼”이 살아났으며 그래서 산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곧 “생명”이다.
요6:63 살리는것은 영(pneu'ma)이니 육(savrx)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rJh'ma)은 영(프뉴마)이요 생명(조에)이라
요6:63은 생명과 프뉴마를 같은 의미로 반복하고 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다. 물론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할 때는 단순히 2,000년 전 육체의 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싸륵스(육체)가 아니라 예수께서 하신 말(레마)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생명은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뜻한다.
요1:1 태초에 말씀(호 로고스)이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래서 그리스도안에 생명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는 말씀이다. 따라서 말씀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말씀(그리스도/생명/진리)이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단순히 육체(싸륵스)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으면 죽은 자들이다. 그것이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는 말이다.
겔18:4에 범죄(af;j)하는 혼은 죽으리라고 했다. 목사들이나 복음주의 전도자들은 끊임없이 인간의 죄인 됨을 외친다. 그들은 우리는 명령을 어겼으므로 죄인이다. 아버지가 말한 대로 우리는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화가 났다. 중한 벌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실제로 죄의식을 느끼면서, 잘못을 말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궁극적 정의와는 사뭇 다르다. 죄(af;j)는 헬라어 하마르티아인데, 궁술에서 온 말이다. 과녁의 정중앙에서 벗어나다. 과녁의 정중앙(진리/그리스도)에서 벗어남이다. 진리(생명되신 그리스도)에서 벗어나면 그것을 죄(af;j)라 하고, 생명에서 벗어났으니 당현히 혼(네페쉬)은 죽는 법이다. 이들이 예수께서 말한 죽은 자들, 즉 네크로스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네크로스들을 산 자로 살리시는데 어떻게 살리시는가? 바로 진리되신 그리스도이다. 요한복음의 언어로 빛이 어둠(네크로스)에 비추는 것이다. 그래서 네크로스들이 산자로 변한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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