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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설교문

진리(언약)를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by 다바르아마르 2020. 1. 22.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일곱날의 언약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짓는 건물도 완공하기까지 필요한 설계도와 계획서가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엄격한 계획과 설계도를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기록한 생명책 입니다.

 

첫째 날 부터 일곱째 날 까지 순서대로 기록한 이유는
자신의 언약 백성들을 같은 과정을 통하여 땅에서 하늘로 완성 하시겠다는 아버지의 의중을 읽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록된 모든 말씀은 이미 지어놓은 성전과도 같습니다.
이 성전을 자세히 주의하여 관찰하는 동안 언약 백성들의 마음 심령 속에 진리의 성전이 차곡 차곡 지어져서 완성된 성전이 되게 하십니다.

 

완성된 성전 즉 안식에 들어가기전 까지는 진리의 복음을 들으며 깨달아 가지만 사람마다 이른 지점이 다르므로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을 하게 됩니다.

 

소경이 코끼리의 뒷다리 하나 만지면서 코끼리의 온전한 모양으로 여긴다면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 까지도 하나님의 큰 틀 안에서 계획된 것이니 그 사람을 탓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귀엽게 보일 뿐이지요.
넘어짐과 일어서게 하시는 분은 주인에게 달렸으니 말입니다.

 

여러사람이 동시에 같은 영화를 보았을 때 그 스토리에 대한 이해도와 감동은 서로 다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그 영화의 제작자일 것이며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겠지요.
그 사람들은 수많은 시간과 정열을 다 쏟아 부었을 것이며
함께 동거하며 함께 울고 웃는 세월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진리를 전하고 듣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며 박수를 보내기도 하지만
그들의 태도를 보며 씁쓸한 기분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생명에 관한 진리의 말씀을 한편의 영화 관람보다도 못하게 취급하니 말입니다.
원어 몇개 파자해서 전했으니 되었고 진리의 말씀이라 여기고 들었으니 다 되었다는 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거기에는 제작자와 함께 동거하며
함께 땀을 흘리고 더위와 추위를 함께 견뎌내는 사랑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한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자기가 없어야 가능합니다.
설계도면이 주장하는대로 자기를 내어 주어야 완성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는 너와 내가 하나가 되자 하시는데
아이의 대답은 진리를 깨달았으니 됬잖수? 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여전히 지맘대로 삽니다.
아버지가 눈물이 글썽이면서 또 한마디 하십니다.
아들아 네가 나와 하나가 되었다면 너희 주장은 더이상 필요가 없지않느냐?
너의 뜻과 기준은 아버지 안에서는 더이상 불필요 하지 않겠느냐?  

 

이사야 45 장 7 절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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