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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기도 말씀

일곱 때를 사는 성도

by 다바르아마르 2020. 5. 9.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1:1 βιβλος γενεσεως ιησου χριστου υιου δαβιδ υιου αβρααμ

 

비블로스 게네세오스 이에수 크리스투 휘우 다위드 휘우 아브라함

 

 

 βιβλος (976 비블로스) 명사 주격 여성 단수, 계라

γενεσεως (1078 게네시스) 명사 속격 여성 단수, 

ιησου (2424 이에수스) 명사 속격 남성 단수, 예수

χριστου (5547 크리스토스) 명사 속격 남성 단수, 그리스도의

υιου (5207 휘오스) 명사 속격 남성 단수, 자손

δαβιδ (1160b 다위드) 명사 속격 남성 단수

υιου (5207 휘오스) 명사 속격 남성 단수, (son)

αβρααμ (11 아브라암)사 속격 남성 단수, 아브라함과 

 

직역을 하면 이렇습니다.

 

비블로스 게네세오스 이에수 크리스투스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의(생애, 탄생) 

휘우 다위드 휘우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아들, 다윗의 아들

 

아브라함의 아들, 다윗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생애, 탄생)의 책

 

 

주어가 없는 문장 

마태복음11절은 동사가 없는 명사로만 되어 있는 문장입니다. 소위 주어와 동사가 없습니다. 문장에는 주어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어가 없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주어가 없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작가나 독자가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거나, 이후에 주어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명사로만 되어 있는 문장은 그 내용이 이미 완성된 문장입니다. 주로 어디에 많이 사용 되냐면 신문 기사나, 책이나 글의 제목에 많이 사용됩니다. 제목에 명사로만 구성된 문장이 사용되는 이유는 그 제목을 설명하는 내용이 이후에 기술되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이미 완성된 글의 내용을 제목으로 기록한 것이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제목을 통해서 완성된 글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명사로만 되어 있는 문장은 이미 완성된 문장이기 때문에 그 완성된 글을 전제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반대도 성립함)

 

 

비블로스 기원의 책

1절에 명사의 격을 보면 주격과 속격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주격 중에서 주어 역할을 하는 단어가 바로 맨 앞에 나와 있는 비블로스라는 단어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The book 으로 되어 있고, 성경 사전에선 이렇게 설명합니다.

 

 

비블로스는 고대 어형인 뷔블로스(셈어 게발 [구블라 Gubla])에서 파생되었다. 이 단어는 본래 파피루스 식물, 또는 그 식물의 섬유질 줄기를 의미하였는데, 이 식물은 시리아의 뷔블로스 항구를 통해 그리스로 수출되었다. 이 단어는 단지 파피루스라는 기본 의미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기록에 사용되는 것이면 어떠한 재료에든지, 예를 들어 진흙 판, 가죽 양피지에 사용되었고, 또한 그 위에 기록한 것에 대해서도 사용되다. 결국 이 단어는 '두루마리' scroll, '' book, '기록' writing이라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고 후에는 '증서' deed, '편지' letter, '명령서' order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영어의 바이블(Bible)은 단어의 복수형 타 비블리아(to biblia)가 라틴어를 거쳐 생겨난 것이다. 성경에서 사용된 브블로스는 대부분 두루마리 형태이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

비블로스가 사용된 용례 중 중요한 성경이 계시록입니다.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계시록, 성경, 말씀 계시록이 말하는 이 책은 어느 책을 말하는 것일까요? 요한 계시록일까요? 아니면 성경 전체일까요?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란 누구일까요?  지킨다는 무슨 뜻일까요?

 

요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테레오 지키다 테레오인데 보존하다, 지키다란 뜻입니다. 도덕법으로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정도가 아니라, 계명이 담겨진 그 상태, 말씀이 보존된 그 상태를 테레오라고 합니다.

 

 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하나님의 지키심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무턱대고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분이야. 를 믿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지키시느냐? 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킨다는 것은 말씀이 나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이 나를 지킨다는 것과 내가 말씀을 지키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알면 됩니다. 말씀이 내 안에 생명으로 담겨지는 것을 말씀이(하나님이) 나를 지킨다고 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생명이 말씀으로 내 안에 있으니까? 내가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22:18 내가 이 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들

여기서 말하는 책은 요한 계시록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의미합니다. 창세기는 성경전체를 앞에서 요약한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성경의 제목과 목차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라면 계시록은 성경을 끝에서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묵시복음과 묵시문학 

그런데 성경의 마지막인 계시록을 흔히 묵시록이라고 합니다. 묵시 문학을 배경으로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묵시라는 단어는 잠잠할 ()에 보일 ()입니다. “()”의 의미는 잠잠하다, 입을 다물다, 고요하다, 조용하다란 뜻이 있고 ()” 보이다, 알리다, 지시하다, 가르치다, 땅귀신, 두다라는 의미로 원래 제물을 놓는 제단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제물을 신에게 보여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말이 없이 진리를 전하는 것 

묵시 말을 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흔히 환상이나 이상과 같은 상징과 비유로 진리를 보여주는 것을 묵시라고 하고, 이러한 관점으로 글을 쓰는 것을 묵시문학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흔히 구약의 예언서나, 신약의 계시록이 이러한 묵시문학에 포함되어 여러 환상과 이상과 상징과 비유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입이 다물어져 소리로 뜻을 전하지 못하니까 그림으로 뜻을 전하는 것 묵시입니다. 그래서 묵시 문학에는 반드시 해석과 해석자들이 중요합니다. 보이는 를 어떻게, 어떤 위치에서,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묵시 문학에는 상징과 비유 등이 많이 표현되는 것이고, 묵시문학의 해석은 이러한 상징과 비유로 그려진 그림언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묵시문학은 독자의 해석에 따라, 이해에 따라, 받아들임에 따라, 그 마음의 상태와 삶의 위치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해석자의 위치 

묵시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묵시의 내용만큼 묵시를 보는 해석자의 위치입니다. 청자가 화자의 소리를 통해서 의미를 정확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화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소리는 물리적 세계에서 들리는 소리, 소위 주파수로 흐르는 파동이 아니라, 상징과 비유로 감추어진 묵시입니다. 그래서 물리적 세계에서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듣고 보면 자기 자신의 소리인데 하나님의 소리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소리와 자신의 소리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자기 밖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듣는 시늉을 하고 듣는 척은 해도 궁극적으로 그가 듣는 소리는 자기 자신의 소리입니다. 사람이 누구에게 속는다고 하는데, 궁극적으로 나를 속이는 주체는 나 자신입니다. 상대방은 그런 나의 욕망을 잘 이용해서 속여 이득을 취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지혜자는 이렇게 자기 자신의 소리에 속지 않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외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우리의 상태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주리고, 목마르는 그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태와 위치가 묵시를 보고,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묵시는 이렇게 물리적 소리와 그림이 아니라, 감추어진 소리와 그림으로(상징과 비유) 하나님의 그 마음이 전달되는 복음의 본질입니다.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다른 책이 펴졌으니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사망의 책과 생명의 책 

보좌가 있습니다. 보좌 앞에 죽은 자들이 섰습니다. 그리고 책들이 있습니다. 그 옆에 또 다른 책이 있다. 다른 책은 생명책입니다. 앞의 것은 죽은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 죽은 책들과(사망의 책들) 산 책이(생명의 책)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 살아 있는 것입니까? 죽은 것입니까? 성경책은 죽어 있습니까? 살아 있습니까? 근본적으로 성경책은 죽은 책입니다. 성경책이 죽어 있다는 것은 성경이 해석되지 않아서 내 안에 내용으로 들어오지 않으면(테레오) 그 책은 나를 죽이는 책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성경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성경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성경대로 못합니다. 성경이 나에게 어떻게 살라고 하는지 알지 못하면 죽은 자들입니다. 죽은 책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음 

그런데, 그 죽은 책들 속에 무엇이 있냐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책들에 자기들의 행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대로 살면 생명책이 되는데, 성경을 열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들의 행위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죽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 

13절에 바다가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사망과 음부도 죽은 자들을 내어주니까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가 불 못에 던지우니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둘째 사망이란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둘째 사망, 즉 불 못에 던져지게 된다고 합니까?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이 불 못, 둘째 사망에 던져진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기록되지 못한 자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경을 보면 그 성경은 죽음의 책입니다. 행위의 책이고, 율법의 책이고, 선악의 책이라는 것입니다. 희생제물로 오신 예수를 열심히 섬기고, 요셉과 다윗과 다니엘과 사도 바울이 자신들의 멘토이고 영웅이라고 상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기독교는 죽음의 종교이고, 성경은 죽음의 책이고 행위의 책입니다. 하나님이 짐승과 용과 거짓선지자로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가 탄생한 책들

1:1의 책은 누가 탄생한 책이겠습니까? 예수가 탄생한(게네시스) 책입니다. 그러면 이 책은 누구입니까?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탄생하셨습니까? 베들레헴이라는 양식의 집에서 탄생했습니다. 내안에 그 양식이 있으면 예수가 탄생한 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탄생했으니까 내가 떡이 있는 집, 내일의 양식, 그날의 양식이 있는 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일의 양식이 있는 성도를 생명의 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고 부활하고 재림하는 현실 

두루마리가 펼쳐지는 내 인생의 시간과 공간의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되고, 찾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되고, 그분을 찾아야 하고, 그분이 나를 가르쳐야 하고, 그분과 함께 죽어야 하고 그분과 함께 부활해야 하고 그분과 함께 재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부활된(아나시타시스) 자가 되고, 그것이 둘째 사망에 들어가지 않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둘째 사망에 들어가지 않는 자를 계20:4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일곱 때를 사는 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지금 성령을 받은 성도의 때, 마지막 때가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부활 논쟁하면 사두개인이 대표입니다. 예수님과 논쟁할 때 일곱 형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천국에서는 그 부인은 누구의 부인이 되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부활시에는 시집도, 장가도 없이 천사와 동등하다고 예수님이 답하셨습니다. 그렇지요? 시집과 장가라는 세상 일이 아니라 이제 천사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자로 살아가는 것이 첫 번째 부활의 삶을 사는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곱은 성도가 살아야할 일곱 때, 일곱 날, 안식의 날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부자의 다섯 형제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때에 머물러 있냐면 다섯 때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섯 때는 모세 오경, 율법 아래 있는 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사로와 대조되었던 부자의 형제가 다섯이 있는 것입니다. 다섯 때를 살고 있는 그의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려서 여섯 때를(예수님 만나는 기간) 거쳐 일곱의 날을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때를 여섯 때라고 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때가 차매 여자(우리)에게서 아들을 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낳아 왕 노릇하는 것을 천년왕국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일곱 때라고 합니다.

 

나의 성장의 이야기 

성경은 나의 성장과정을 설명하는 책입니다. 발달심리학의 신학적, 초월적, 영적, 묵시적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과거의 예수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예수는 모든 사람이 믿고 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성탄절만 해도 그렇습니다. 부활절만 해도 그렇습니다. 미래의 예수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과거의 예수를 산타로, 부활의 예수를 토끼로 우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성경책에 기록된 예수 

주 예수가 목적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믿음의 내용이면서 목적입니다. 그러면 시간적으로 언제의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까? 과거의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내가 믿으면 사실이고, 믿지 않으면 거짓이 되고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이란 믿어도 사실이고, 안 믿어도 사실입니다. 믿는 자는 과거,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믿는 자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불일치가 없는 일관된 삶, 일치된 삶이 안식이고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힘써서 일하는 6일의 삶과 안식하는 7일의 삶에 일치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책은 대한성서공회가 독점하여 발행하고 서점에서 값을 지불하고 사는 성경책이 아니라, 이 인생 역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섬길 때 이렇게 섬기라고 한 것입니다.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13:9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16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안과 밖에 기록된 예수 하나님이 우리의 목숨과 뜻과 마음이라는 , 미간과 손등이라는 에 말씀으로 기록될 때 우리가 생명의 책으로 일곱 때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옛 언약)은 밖에 기록되는 말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고, (새 언약)신약은 안에 기록되는 말씀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전서를 통해서 안과 밖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생명책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펼쳐지는 역사가 성경전서이고 곧 우리의 인생 역사입니다. 이것에 불만 없이(알아서) 살아가는 자를 성도라고 하고 불만을 품고(무지해서) 거역하는 자를 불신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지키심을 받아 살아가는 자들을 복 있는 자라고 합니다.

 

121편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