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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기도 말씀

애통하는 자의 위로이신 하나님(마5:4) 

by 다바르아마르 2020. 5. 21.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4

(본문) μακαριοι οι πενθουντες οτι αυτοι παρακληθησονται

 (원형) μακάριος πενθέω τι ατός παρακαλέω

음역마카이오스 호 펜데오 호티 아우토스 파라칼레오

직역)복되도다 애통하는 자여(호 펜데오위로가 주어질(파라칼레오것이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 

예수님은 첫 번째 복으로 심령이(프뉴마가난한 자의(프토코스복을 말씀하시고심령의 가난한

그가 바로 천국(호 바실레이아 호 우라노스하나님 나라의 식민지)이라고 하십니다.

 

애통과 위로

두 번째 복은 애통과 위로와 관련된 복입니다애통하는 자가 복된 이유는 바로 그가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위로를 받다가 수동태임으로 그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이러한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는 애통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이고다른 말로 위로의 내용이 애통이라는 것이며위로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우리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우리 밖에서 주어지는 수동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복음의 진리가 우리를 어떻게 애통하게 하는지그리고 애통이 어떻게 우리에게 위로의 내용이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애통하는 자 

애통하는 자로 번역된 헬라어가 “호 펜테오입니다. “펜데오라는 동사에 “()”라는 정관사가 붙어서 동사현재분사능동주격으로 “능동적이고 반복적으로 애통하는 행위를 설명합니다따라서 이 애통은 지속적인 반복과 능동으로 그의 내면과 인격 안에 맺혀진 영적 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애통과 성품 

애통”(펜데오)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에 대한 반응 정도가 아니라하늘의 복을 받은 성도의 인격과 내면 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는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것은 도덕적인 성품이라고 하기보다영적인 성품입니다복음의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진리에 의한 지속적인 인격에 영향으로 맺혀지는 성품이 있습니다.

 

팔복과 영적성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팔복의 내용이 다 그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심령의 가난함애통함온유함의에 주리고 목마름긍휼히 여김마음의 청결화평케 함의를 위해 박해 받는 것들은 이렇게 성도의 역사와 인격마음속에 맺혀지는 경향성이면서 열매입니다.

윤리와 도덕이 아닌 성도의 생명력 

우리는 그동안 이러한 것들을 도덕적인 어떤 것 정도로 치부했습니다혹은 복 받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해야 할 목적론적인 윤리적 행위 정도로 이해했습니다.(어떤 일을 행할 때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식으로 윤리적 행위를 하는 것그러나 이러한 팔복은 우리 안에는 없기 때문에 우리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지만우리의 인격과 성품삶의 방향과 내용으로 어떤 지향점을 향해 살아 움직이는 성도에게만 있는 생명력입니다.

 

애통의 다양한 의미 

한글만 보더라도 애통이라는 단어에는 아주 많은 의미와 내용이 있습니다그래서 “펜데오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구약성경으로 가면 아주 다양한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그 의미는 눈물을 흘리다슬퍼하다애도하다원통해하다통곡하다울부짖다 등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단어로 그 정도와 상태에 따라서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또한 일반적으로 볼 때도 슬픔이라는 감정의 표현은 다양한 감정에서 나옵니다외로움고독고통분노좌절절망감미움원망등과 같은 다양한 감정의 상태를 슬픔으로 표현합니다. “펜데오에는 이러한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애통의 근원과 본질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된 상태로서의 애통(펜데오)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외로움고독고통분노좌절절망감등과 같은 인간이 경험하는 이런 감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애통일까요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본문이 말하는 애통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에서 흘러나오는 애통이 아닙니다.

 

일반적 감정의 표현인가복음의 내용인가? 

쉽게 말해서 누구와 싸워서 화가 나고원통해서 교회가서 울면서 기도한다고 할 때 그 겉모습은 애통하는 모습입니다그래서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이 사람은 애통하면서 기도하고 있으니복 받은 성도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애통은 그런 애통이 아닙니다그것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복으로서의 바라크의 내용이 아닌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슬픔입니다우리의 일반적인 감정의 표현이지복음의 진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복음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그렇다고 바라크가 우리의 일상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이원론적인 개념은 아닙니다.)

 

가난한 심령에서 나오는 애통 

문맥상 이 애통은 심령의 가난과 관련되어 있습니다우리가 심령의 절대적 가난즉 영적으로 완전히 파산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게 될까요선악과 먹어 선악판단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자의 심령이 완전히 파산당하여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에게서 나오는 첫 번째 반응이 바로 애통입니다성경이 말하는 애통은 감정적인 격정이나심리적인 외로움 속에서 나오는 눈물만은 아닙니다.(물론 이러한 감정적 격정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이 말하는 애통은 하늘의 복을 받아 그 심령이 가난하게 된 자자신의 존재의 근원자체가 완전히 무너지고파산당한 자의 외침이며탄원이며진리로 말미암은 원한과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터져 나오는 그의 전인의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애통과 눈물 

우리는 언제 애통합니까생명이 없을 때애통 속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은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심기어지고열매로 흘러나오는 과정입니다그래서 심령이 가난하면 애통하고애통하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생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성경에서 애통하는 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보는 거울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20: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1:2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통[곡하여]

 

지금 이스라엘이 대성통곡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9: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27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열 두 덩이로 나누어진 여자 

사사기19, 20장에 가면 레위 사람의 아내가 베냐민 족속에 속한 기브아 사람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당했습니다.(율법 아래 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습이 바로 이러합니다.) 레위사람이 그 아내의 시신을 12조각으로 쪼개어(율법의 핵심은 조각난 쪼가리입니다그것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으면 우리가 그렇게 조각나게 된다는 것입니다.각 지파로 보냈습니다이 일로 이스라엘의 연합군대가 일어나 베냐민 족속과 전쟁을 치르는 장면이 사사기 20,21장의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부스러기로 보는 자들 

이스라엘의 절망적 상황은 도덕적윤리적 타락이 아니라하나님의 말씀을 조각내고부스러기로 만드는 율법적 행위라는 것입니다그것을 하나로 보지 못하는 것이 살인이고간음이고타락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이 세상을율법을하나로 보라고 주셨는데선악과 먹은 인간들은 이 세상을 다 부스러기 조각으로 보고 그것으로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혈안입니다그 모습을 사사기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불임의 고통 

이렇게 이 세상을 율법의 조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모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증상이 있는데그것인 무화과나무처럼 잎은 무성한데 생명열매를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왜냐하면 그에게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씨가 없기 때문입니다그 말은 그가 곧 생명 없는 죽은 존재라는 것입니다이렇게 이 생명 없음곧 불임의 고통 속에서 애통하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그녀가 어떻게 생명을 낳는 자가 되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삼상 1:7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먹지 아니하니 8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율법) 낫지 아니하뇨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곡하며

 

율법이 진리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열 아들로 주어진 율법이(십계명열 둘 이라는 진짜 아들로(은혜진리완성되지 못하면 그 열 아들은 우리에게 율법의 계명이(조각난 양식될 수밖에 없습니다열 아들을 줄 수 있는 남편이 우리에게 씨를(내일의 양식건네주어야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것입니다이렇게 자신의 현실과(조각난 양식진리의 은혜를 알고 있었던 한나가 한 행동은 무엇입니까기도하고 통곡하는 것입니다기도하고 통곡하였기 때문에 생명이 주어졌다 라기 보다는 조각나 있는 율법의 고통불임의 고통 속에서 생명을 받는 과정 속에 기도하며 통곡하는 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그렇게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생명으로 주어졌습니다성도의 애통과 위로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부스러기로조각으로 주어진 율법 속에서 하나로 완성되는 그 생명을 잉태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애통이면서 위로인 것입니다.

 

삼상1: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이러한 성도의 애통과 하나님의 위로가 구약 성도들이 경험했던 복음의 진리이고 신앙의 내용인 것입니다. 

 

 6:6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126:6 [울며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39: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

 

 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80:5 주께서 저희를 [눈물양식으로 먹이시며 다량의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1:2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2:11 내 눈이 [눈물에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 18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강처럼 흘릴찌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찌어다

 

하나님의 위로 : 곁에서 부르다

위로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파라칼레오입니다뜻은 “소환하다초청하다권하다훈계하다격려하다위로하다애원하다간구하다.”입니다. “파라칼레오는 파라(parav, 3844: ~곁에)와 칼레오(kalevw, 2564: 부르다)에서 유래했으며, '자기 곁으로 부르다'를 의미합니다.

 

파라칼레오가 구약성경으로 가면 “나함이라는 단어로 사용되었는데나함이 사용된 용례를 보면 이렇습니다.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135: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 종들을 긍휼히 여기시리로다

 

위로의 하나님 파라칼레오는 바울에게 있어서 신약교회를 향한 복음적 권면을 할 때 많이 사용된 단어입니다.

 

고전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파라칼레오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파라칼레오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후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파라칼레오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파라칼레오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파라칼레오)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0:1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파라칼레오)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파라칼레오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성도의 위로 

바울이 말하는 위로는 자신들이 교회에게 위로는 준다는 개념이 아닙니다성도의 유일한 위로는 하나님뿐이 없습니다사람과 환경이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은 그 위로의 내용을 사람이나 환경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이 사람과 환경을 통해서 당신의 위로를 건네준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사도 요한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보혜사라고 부른 것입니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26 [보혜사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위로의 하나님 : 보혜사 

보혜사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paravklhto")입니다기본적인 뜻이 “돕는 자중재자변호자위안자입니다그래서 한글 성경이 “보혜사(保惠師)”라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하나님이 성도에게 보혜사가 되시는 이유는 율법의 고통즉 쪼가리 쪼가리로 이해되는 이 율법을 하나의 진리로 은혜의 생명으로 건네주시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우리 주님이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왜냐하면 그에게 하나님이 부스러기를 건네주는 율법이 아니라진리를 건네주시는 위로의(보혜사파라클레토스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이 여러분에겐 조각난 부스러기를 주시는 율법입니까호지 않는 옷을 진리로 건네주시는 보혜사이십니까애통하는 자는 이렇게 하나님이 그에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