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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기도 말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십일조/마아세르)

by 다바르아마르 2020. 5. 2.

1: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맛소라 사본에서 레위기의 제목은 바이카라”(ar:q]YIw") 그리고(wI) 그를 부르다 (ar;q)입니다. 완료형이 아니라, 미완료형 임으로 부르심이 완료된 것이 아니라, 계속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애굽에서 불러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모세를 통해서 또 부르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로 세우기 위해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 예배를 구약에는 제사라는 방식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제사를 드리는 곳이 바로 회막입니다.

 

회막  모에드 오엘의 합성어입니다. ”모에드는 한자의 “()와 같은 뜻으로 정한 때, 장소, 모임이란 뜻이고 오엘도 한자의 “()과 같은 뜻으로 천막의 개념입니다. ”모에드, 오엘 천막으로 모이는 장소입니다.

 

장막, 성막, 회막 구약에서 모임의 장소를 의미하는 단어는 다양합니다. 율법을 받기 이전에는 족장들의 집을 장막이라고 하였고, 이곳이 언약백성의 모이는 장소였습니다. 율법을 받고 나서는 성막이라고 하였으며, 일반적으로 백성들이 모이는 장소로 회막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임의 장소는 이동식 텐트로 천으로 세웠는데. 이제는 이동식 텐트가 아니라, 정한 장소에 금으로 세운 것이 바로 성전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임의 장소가 성령 강림을 통해서 신약에는 교회라는 가르침의 장소로 완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원시 기독교 공동체는 모이기에 힘썼던 것입니다.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성도들이 모여서 무엇을 했습니까? 가르치고 교제하며 떡을 떼며, 성전에서 기도에 힘썼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말씀, 복음의 진리를 배우고, 나누고 교제하고, 전하는 그 일을 했는데, 그 일을 함께 모여서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것은 나 혼자 잘 믿고, 나 혼자 진리가 되고, 나 혼자 구원 받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나 개인의 구원이지만, 공동체적인 지평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교회, 모여서 말씀을 배우는 곳 우린 그동안 왜곡된 교회론에 상처를 많이 받아서 교회 건축, 교회 성장, 교훈 운영 이런 것이 목회자 개인의 욕망이나, 그 집단 자체를 위한 것으로 여겨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고, 헌금하고, 수고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열심히 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의 목적 의도 내용이 무엇이냐 입니다. 자신의 알량한 종교심의 충족이나, 이러한 행위로 스스로 위안과 자기만족과 의를 삼거나, 혹은 행하지 않을 때 받을 죄책감이 무서워서 행하는 것이 문제이지, 그 행위 자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묵시 패러다임이라고 해서 인간의 행위를 저급한 신앙의 수준이나, 부정적인 것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함께 모여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우며() 나누고 땅 끝까지 전하는 모임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교회의 정의입니다.

 

2절은 회막에 모이는 이유에 대해서 말합니다.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

회막으로 모이는 이유는 예물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레위기는 예물을 드리기 위한 규례와 규범이 기록된 책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왜 우리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할까요? 예물(禮物)이란 한자는 예도 예 물건 물입니다. 예의를 갖추는 물건입니다. 원래 라는 단어는 유교의 가장 기초적인 교리인 인의예지할 때 자입니다. 그래서 예물 고마움을 나타내거나 예의를 갖추기 위하여 보내는 돈이나 물건 혼인할 때 신랑과 신부가 기념으로 주고받는 물품 신부의 첫인사를 받은 시부모가 답례로 주는 물품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의와 도리를 갖추어 예물을 바치라?  그러면 레위기에서 말하는 예물은 과연 이러한 의미의 예물일까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예물을 바치라고 할 때 예의와 도리를 갖추어서 바치라는 것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예물은 한자의 예물과 다른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떤 예물을 받고 싶어 할까요? 얼마큼의 예의를 갖추면 우리를 흡족히 여기시고 진노를 내리지 않으실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인간의 어떤 예물도 하나님이 흡족히 여기는 예물은 없으며,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런 예물에 걸신들린 우상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 그런데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는 예물을 받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예물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물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 뿐이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예물로서의 그리스도를 무엇으로 받았습니까? 약속의 씨로 받았습니다. 말씀의 씨를 받아 우리 인생을 통해서 그 씨가 자라 씨의 열매가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물을 달라고 할 때 우리가 받은 약속의 씨를 예수 그리스도로 드리지 못하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8: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다른 불 그래서 레위기10장에 하나님이 명하지 않는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하나님의 것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3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14: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입술의 열매와 호몰로게오 이 입술의 열매가 요한서신에서는 호몰로게오”(시인하다, 고백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호몰로게오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고, 그 사랑은 곧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호몰로게오 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랑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요일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코르반 : 예물

레위기1:2절이 말하는 예물은 코르반이라고 합니다. “코르반 예물, 제물, 헌물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코르반 가까이 오다라는 뜻인 카라브에서 유래했으며, 가까이 가져오는 것, 즉 드려진 것, 특별히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희생으로 드려질 것으로 성소에서 제의적 희생제사와 제물에 사용되었습니다.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예물을 드리려거든 2절을 원문을 근거로 조금 더 깊이 보면 이렇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민 아담입니다. “사람이 라고 하면 됩니다. “드리려거든 카라브로서 들어가다, 가까이가다를 의미합니다. 또한 히필(사역형), 미완임으로 가까이 가게하다입니다. “코르반(예물) 카라브(가까이)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직역을 하면 람 중에 여호와께 예물로 가까이 가게 하려거든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물의 진정한 의미는 예물을 받은 대상과 가까이 하는데 있습니다. “코르반(예물)으로 카라브(가까이가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부르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서 하나님의 것으로 가까이 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  카라브가 구약성경에 약 280번 사용되었는데, 레위기에서만 110회성도 사용되었습니다. 거의 대부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2: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3:1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9:7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

 

 23:37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드릴지니]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할 예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말씀 드렸듯이 우리가 우리 것으로 드리면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은 하나님이 주라고 한 그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물을 드린다는 것은 인간 편에서 인간이 노력하고 애쓰고 수고해서 만들어 놓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만드신 그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취하심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은 뭐가 부족해서 우리의 예물을 받으시는 분도 아니시고, 또 우리의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할 만한 그 무엇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것을 취하십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그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물의 진정한 의미이고, 구약제사의 진정한 목적이며, 진리와 영 안에서 드리는 예배의 진정한 목적인 것입니다.

 

종교심과 죄책감과 자기 의 그런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려야할 예물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거라도 바쳐야지 하나님께 밉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덜며, 그래도 한만큼은 했다는 심정으로 봉사와 헌신과 헌금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들은 이런 성도들의 종교심과 죄책감을 부추기며 무지하고 강퍅하고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종교생활을 하게 합니다. 예레미야의 고백처럼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백성들은 이를 좋게 여기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불러낸 자들에게 레위기는 이렇게 하나님이 불러서 당신에게 예배하는 자를 세우시는 내용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레위기는 광야에서 요단 앞까지 이르는 영적인 순례에 대한 제의적 방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제의의 제사의 방식이 소위 5대 제사라고 하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제죄 입니다. 이렇게 레위기는 하나님이 애굽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에서 정하신 방식으로 정하신 예물을 받으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우리의 광야 40년 다시 말해서 인생 속에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그래서 레위기의 마지막 내용이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는 것으로서의 십분의 일에 대해서 말하며 끝나는 것입니다.

 

27:28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29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31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32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33 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무르지 못하리라 34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한 것 목자의 지팡이는 목자의 가르침이며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우리의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이라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의 마지막 하나가 사랑임으로 십의 일은 열의 하나로서 그 사랑을 의미한다 했습니다. “십일조라는 단어가 마아세르인데 마아세르는 십을 의미하는 에세르에 장소, 말씀, 젖을 의미하는 ”(m)이 조합된 단어입니다. “에세르”() ”(진리)로 설명되는 것입니다. 결국 레위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을 주셔서 하나를 거두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셔서 진리를 거두시는 것이고, 계명을 주셔서 사랑을 거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광야에서 하나님의 것을 예물로 바치는 것이 예배이며 성도의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예물로 바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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