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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기도 말씀

아브라함과 모세의 3일길

by 다바르아마르 2020. 3. 21.

아브라함은 삼일 길을 걸었다. 우물사건 직후 아브라함은 인생과 신앙에 있어 최대의 시험 시기를 맞이한다(22). 이 당시 아브라함 나이는 120세 전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다. 모리아는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악지대를 총칭하는 곳으로 '마르에' '야웨'의 합성어로 '야웨께서 보이신 곳'이란 뜻이다. 모리아의 이름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그곳을 지정하고 선택하셨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모리아 지역은 당시 아브라함이 기거하던 브엘세바에서 대략 80km 떨어진 지역으로 3일 길을 걸어야 되는 거리다. 3일 길을 걷는 아브라함! 그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래서 그의 길은 구약의 갈보리인 것이다. 그리고 2천년 후 그리스도가 또한 그 길을 걸었다. 십자가의 길이다(19:17-18). 아브라함은 모리아를 올라갔고, 예수는 골고다로 올라갔다. 둘다 죽음의 길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아버지의 고뇌는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저주의 나무에 매달게 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고뇌이다. 묵묵히 뗄감을 지고 산으로 올라간 이삭은 묵묵히 나무를 지고 산으로 올라간 예수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길로 제자들을 초대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초대한다. 죽음의 길이다. 그것이 3일 길이다.

 

모세 또한 그  삼일 길을 걸었다. 모세는 바로에게 3일을 요구했다. ? 바로에게 삼일만을 요구했나?

 

3: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야웨는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다. 건너간 자들의 엘로힘이다. 아브라함은 건너간 자이다. 바벨론에서 약속의 땅으로 이동했다. 야곱은 라반의 땅에서 강을 건넜다. 이제 이스라엘도 애굽을 건너 광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제사이다. 그런데 왜 삼일 길일까?

 

실제로 모세는 바로에게 사흘길을 요구한다(5:3, 8:27). 더욱이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한 기한으로 일주일이나 열흘도 아닌 사흘만을 요구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애굽의 고센 땅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릴 시내산까지 보통사람의 걸음으로 소요되는 시간이 3일 정도 된다고 한다. 그 말은 애굽의 추적으로부터 도망할 수 있는 안전한 거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는 단순히 바로 왕에게 도망갈 하나의 핑계일까?

 

3일은 애굽으로부터 벗어나는 기간이다. 속박의 땅! 노예의 땅! 그 땅에서 벗어나는 기간이다. 즉 우상숭배와 구별되는 시간을 뜻한다. 그러므로 3일은 구원의 기간이다. 그것이 곧 제사의 목적이기도 한 것이다.

 

제사(자바흐/2076)동물을 도살하다라는 뜻이다. 자바흐는 동물을 도살하는 것인데, 동물은 곧 자기 죽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법으로 이동하는데 제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의 참된 의미는 바로 생명의 법! 성령인 것이다. 성령으로 참 예배자가 되는 것이 제사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죽음이 필수인 것이다. 자기 죽음은 자기 존재 됨의 부정이다. 내가 선악의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나다! 나는 떨기나무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떨기나무에 진짜 존재가 임할 때 나는 그때 비로소 존재가 된다. 꽃의 이름을 불러 줄 때 그 꽃은 드디어 꽃이 되듯이, 진짜 존재인 그가 나를 불러 줄 때 나는 드디어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

 

이 제사를 출5:1에는 절기로 표현하고 있다.

 

5: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광야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함이다.

 

2287  gg"j;   chagag {khaw-gag'}

기본어근【2283, 2328과 비교】; 봉래 의미는원안에서돌다, (특히)  성스런 행군으로행진하다, 절기를지키다, 함축적으로어지럽다:- 기념하다, 춤추다, 거룩한 절기를 지키다, 비틀거리다

 

하가그는 원래 춤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삼상30:16 그가 다윗을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그래서 절기라는 것은 축제를 뜻한다. 절기는 모두 축제이며 구원에 대한 기쁨을 표현 한 것이다. 이러한 축제가 오늘날로 말하자면 예배이다. 여러분들은 왜 이 예배에 참석하는가? 말씀이 단순히 듣는 것이라면 인터넷의 말씀을 혼자 들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예배란 혼인”잔치”이다. “절기”이다. “축제”이다. 야웨 앞에서 춤추는 것이 “하가그”이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라! 혼자추는 춤과 여럿이 같이 추는 춤이 같은가? 혼밥하고 같이 먹는 밥이 같은가? 예배는 기쁨이다. 축제이다. 잔치이다. 그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예배이다. 그래서 그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렇게 모이는 것이다. 이러한 예배로 야웨가 초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뜻을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전하는 것이다.

 

내 백성을 내 보내라! 그리고 광야에서 참된 말씀으로 춤추게 하라! 그만 괴롭히라! 그들은 수고와 멍에로 힘들어 한다. 예배는 축제이다. 예배를 벽돌쌓는 현장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두 증인이다. 두 증인으로서 바로에게 야웨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야웨의 뜻은그의 백성을 샬라흐! 내 보내는 것이다. 애굽에서 광야로 보내는 것이다. 애굽(미쯔라임)은 속박의 땅이다. 속박의 땅에서 광야로 보내는 것이다. 왜 광야인가?

 

광야는 히브리어로<미드바르>이다. +다바르로 구성되어 있는 단어이다. 다바르는 말씀을 뜻하고, 멤은 장소를 뜻한다. 그래서 말씀의 장소가 바로 광야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는 광야를 또 교회라고 한다(7:38). 말씀이 있는 곳이다. 교회에는 말씀이 있다. 그래서 애굽에 있는 사람들은 일단 먼저 이 광야 교회로 나와야 하는 것이다. 광야에서 무엇을 하려고? 축제이다. 말씀의 축제이다. 그것이 곧 예배로 모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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