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숫자 모두 한 마디로 하면 언약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언약의책이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으로 나눈다. 따라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언약으로 정리할 수 있다. 언약을 숫자로 표현하면 7-10-12으로 말할 수 있다. 이 숫자가 성경의 전체이다. 성경을 문자적/계명으로 보느냐 언약으로 보느냐에 따라 생명이 왔다 갔다 한다. 언약으로 보지 못하면 죽음이다. 언약으로 보지못하면 하나님의 열심이 아닌 자신의 열심으로 구원을 이루려하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는 언약이다. 따라서 성경전체를 7-10-12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창1장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7번 되풀이 되는 하나님의 맹세이다. 창1장은 성경 전체의 설계도이며 마스터 플랜이다. 그 언약이 역사속에 쭉 펼쳐지게 되는데 아담-노아-아브라함-모세-다윗-예수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게는 나에게 성취되는 것이다. 그 성취를 안식(tB;v'/솨바트)이라고 한다. 이 안식이라는 단어가 맹세(([b'v;/솨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하나님의 맹세가 성취되었기 때문에 안식이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곳이 브엘세바([b'v² raeB])이다. 왜 하필 브엘세바일까? 브엘세바는7개의 우물이 아니라 7이라는 우물(맹세의 우물)이다. 창세기는 그렇게 약속이다. 아브라함 언약이 중심에 있다. 창세기를 숫자로 표현하면 7이다. 그리고 출~신을 숫자로 표현하면 10이다. 10의 말씀, 언약의 말씀, 그것이 곧 모세언약이다. 출~신은 모세언약이다. 출애굽기는 10이라는 언약의 내용이구요, 레위기는 10계명의 자세한 내용이고, 민수기는 그 10을 이룬 사람들을 계수하는 장면이고, 그렇게 계수된 자들에게 주어지는 언약이 신명기이다.
이 모세언약이 앞으로 펼쳐질 역사의 평가 잣대가 되며 신약의 기초가 된다. 앞으로 진행되는 모든 역사(수~에)는 12이라는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 모세언약으로 평가를 받는다. 문제도 많고 말도 많은 역사이다. 12는 완전수로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나타낸다. 12는 10언약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10언약의 결과가 12아들들이다.
구체적으로 성취되는 것이 야곱이 이스라엘 된 사건이고, 이스라엘의 12지파(아들)의 역사이다. 12는 그래서 아들의 숫자이다. 그 아들의 정점은 다윗이다. 그것이 다윗언약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짓고자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집(왕조)을 약속하셨다. 다윗언약의 핵심은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영원한 나라를 세워겠다는 것이다. 즉 메시아 약속이다.
그리고 욥기부터 아가서는 시가서로 알려져 있다. 시가서는 구원의 서정 전체를 그리고 있다. 욥기는 완벽한 종교인에서 신앙인으로 넘어가는 장면을 그리고, 시편은 그런 종교인에서 벗어난 신앙인들의 삶의 고백이요, 잠언은 성숙한 신앙인들의 삶의 지혜를 말하고, 모든 지혜를 얻은 결론은 전도서에서 세상의 모든 지혜는 헛되다는 것이다. 헛됨을 깨달을 때 진리자가 되어 드디어 보이지 않는 너머의 그 분과 하나로 연합되는 장면이 아가서이다.
이렇게 건너간 아들들의 시적인 고백에서 벗어나서 이제 선지서가 나오는데 선지서는 모두 언약소송이다. 즉 모세언약으로 그들을 고소하고 심판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다윗언약에 근거해서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심판 후 회복이라는 소망 또한 그리고 있다. 그러한 메시아 대망은 이제 예수께서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그것이 새언약 시대이다. 12지파는 이제 12아들로 교체가 된다.
구약과 신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창세기는 7언약의 말씀이다. 언약의 기본이자 모든 성경의 주춧돌 되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4옛언약(출/레/민/신)은 4새언약(마/막/눅/요)과 연결된다. 4복음서는 새언약의 기본이다. 신약의 가장 중요한 말씀이다. 이는 신약의 10이다. 신명기가 2세대에게 전해주는 새로운 설교이듯, 요한복음은 마/막/눅을 새롭게 해석하여 설교한다. 이러한 4언약에 대한 역사가 옛역사서(수~에)와 새역사서(행~몬)이다. 옛역사서에서 12지파가 문제가 많았듯이 새역사서도 12아들들은 율법과의 전쟁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욥기를 욥을 세상적으로는 완벽한 신앙인으로 볼지 모르지만 그러한 율법적 신앙인이 참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렇게 참 하나님으로 건너가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이브리:건너가다)와 대칭이된다.
그렇게 넘어간 자들의 고백이 4편의 시가서(시/잠/전/아)이다. 아가서에서는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이는 신약의 4편의 서신서, 바울의 저작이 아닌 이름을 가진 서신서(약/벧/요/유)의 형태로 다시 등장한다. 야고보(야곱죽음)-베드로(이스라엘로 부활)-요한1,2,3(첫째도 사랑하라! 둘째도사랑하라! 셋째도 사랑하라!) 그리하면 유다가 될 것이다. 유다는 예수의 동생으로 예수께서 우리의 맏형이 되어 우리와 연합되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의 선지서(사~말)는 모세언약에 대한 소송이고 새로운 다윗언약에 의해 메시아를 대망한다. 신약의 선지서인 계시록은 그 옛언약의 상징인 옛성전이 무너지고 새성전이 내려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창세기에서부터 이미 새하늘과 새땅을 작정하셨고, 계시록에서 그것이 성취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계시록은 4복음서를 재진술하는 것 같지만 별도로 빠져 나와있는 이유이다. 창세기가 성경의 알파라면 계시록이 오메가가 된다. 7로 상징되는 창세기가 7의 계시록으로 마무리 된다. 그래서 계시록에는 7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많이 등장한다. 성경은 7에서 시작하여 7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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