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아로새겨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러한 숫자를 단순히 지식으로 알지 말고 숫자 안에 담긴 마음을 담아야 겠다. 그 숫자를 단순히 숫자로 보지 마시고, 마음을 보길 바란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세상의 무엇을 보아도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살펴 보아야만 한다. 성경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는 숫자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12라는 숫자이다. 일주일은 7일로 구성이 되어 있다.그리고 일년은 12달로 구성이 되어 있다.
하늘과 땅이 합쳐지면 7이 되고, 그 완성을 위해 10을 주고, 그렇게 약속이 성취된 자들을 12 아들들이라고 한다. 12는 하늘(3)이 땅(4)에 배가(곱하기)된 숫자가 12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 12라는 숫자를 중요하게 취급을 한다. 야곱의 12아들이 그렇고, 이스라엘의 12지파, 그리고 예수의 12제자가 그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12라는 숫자는 숫자를 넘어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기초하여 144,000에 대해서 알아보자!
계7: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 의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44,000이라는 숫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숫자이다. 신천지에서는 이 숫자를 자기들 집단에 사용한다. 그래서 이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 혈안이다.
그래서 이러한 해석을 경계하기 위해서 144,000을 구원 받은 백성 전체를 상징하는 숫자라고 두루뭉실하게 해석을 하는 것이 일반교회의 해석이다. 두 해석의 공통점은 144,000이 어쨓든 “숫자”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경에서 숫자는 단순히 수가 아니라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신실한 자들을 7장에서는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하고 있다. 1-8절의 144,000, 그리고 9-17절의 ‘흰 옷을 입은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들’. 그런데 대부분의 주석가는 이 144,000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을 동일시 한다.
대부분이 주석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144,000이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동일하다면 7:9에 왜 이 일 후에 라고 기술하고 있겠는가?
또한 왜 굳이 12지파를 자세하게 열거하는가? 지파는 명백히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에 반해 이방인을 나타내는 4중 목록(나라/족속/백성/방언)이라는 표현은 계시록에서 일곱 번이나 나타난다. 이 4중 묘사는 유대인을 언급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나라/족속/백성/방언이라는 말은 유대인들과 대비하는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셀 수 없는 수많은 무리에는 이방인이 포함된 반면 144,000에는 유대지파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두 그룹을 구별해 주어야 한다. 셀 수 없는 무리가 보다 포괄적이다. 셀 수 없는 무리는 모든 나라에서 나온 전체 교회를 나타낸다면 144,000은 보다 구체적인 그룹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144,000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144,000원 숫자라기 보다는 성막, 성전을 상징한다. 즉 구원받을 성도의 상태를 뜻한다. 몇 명이 구원 받을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을 성도의 상태를 상징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우선 144라는 숫자는 성막의 배치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법궤를 중심으로 레위윈 12명이 법궤를 둘러쌌다. 그리고 그 밖을 12지파가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12X12가 되어 144이다. 이동용 성막은 이제 새예루살렘 성으로 표현된다. 그 성전을 측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성곽이 144규빗이다.
계 21: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자를 가졌더라
계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계 21: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왜 하필 12지파일까? 왜 하필 12사도일까? 왜 성경은 이렇게 12를 강조할까? 숫자 3은 하늘의 숫자이다. 이것을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4로 곱하면 12가 된다. 하늘의 뜻(3)이 온 땅(4)에 임하는 것이 12이다. (피라미드는 삼각형과 사각형으로 이루어져있다). 하늘의 뜻이 땅에 임한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따라서 12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1,000은 무엇인가? 1,000은 히브리어 알레프에서 왔다. 알레프의 숫자 값은 1과 1,000이다. 그래서 1,000은 하나님을 뜻한다. 1,000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시간을 뜻한다. 그래서 천년이 하루 같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그래서 천년왕국은 하나님 왕국이며 1,000은 하나님 나라 숫자이다. 12아들들이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이 144,000이다.
이렇게 144,000을 사람의 수로 착각할 수 있는 직접적이 동기는 아마도 각 지파의 수를 12,000 씩으로 해 놓았기에 그럴 수도 있다. 계시록 21장에는 새예루살렘성에 대해서 보여준다. 새예루살렘은 건물로 비유하고 있지만, 신부된 성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측량을 하니 길이, 너비가 12,000 스타디온이다. 그러므로 지파의 12,000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내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계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따라서 144도, 12,000도 전부 상징의 숫자이다. 12,000은 아들(12)이 하나님 나라(1000)를 산다는 내용이다. 그것을 새예루살렘 성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성도 신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즉 신부, 한 사람을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144는 숫자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144,000의 참 의미이다. 구원받는 성도의 숫자에 포인트가 있는것이 아니라, 그 “상태”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다. 즉 열두 지파의 성과 열두 사도의 성벽으로 구성된, 즉 구약과 신약으로구성된 진리의 상태, 그것을 주님은 측량하신다. 그 상태를“144”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 받는 사람이 몇 명인가만 신경쓰게 된다.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인 것이 왜 그리 중요한가? 본인이 “144” 상태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144는 성전의 숫자이며, 그것은 곧 구원받은 성도의 모습을 그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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