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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설교문

진리를 깨닫고 전하는 자 = 직분자

by 다바르아마르 2020. 3. 8.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4:11)

 

위의 구절은 교회 내의 직분이나 어떤 역할을 말하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모든 직분처럼 보이는 단어들은 다 하나를 말하고 있다.

일단 맨 처음 단어가 '아우토스 디도미'다. 그가 넘겨주셨다. 그런 말이다. 성경에서 디도미는 진리를 넘겨줄 때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니까 지금 디도미 이후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다 그 진리를 넘겨받은 사람들, 즉 진리가 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 것이다

사도 '아포스톨로스' 이 단어는 아포스텔로 즉 보내다는 뜻에서 온 단어다. 보내진 자. 그럼 성경에서 보냈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하늘에서 땅으로 보낸다는 뜻이 아니다. 이 땅에서 그 하늘의 진리를 듣고 진리가 되면 그를 '보낸 자'라고 부른다. 즉 아포스톨로스는 이 땅에서 이 땅의 것을 통해 하늘의 것이 된 자를 일컫는 말이다. 곧 내가 그 진리가 되면 내가 사도인 것이다.

둘째 선지자. 프로페테스. 이 말은  전치사 프로+5346페미 의 합성어다. 페미는 보여주다, 나타내다 라는 뜻이다
이 페미는 다시 5457포스에서 온 말인데 드러나게 하다. 그런 뜻이다. 그러니까 주님은 이 땅에서 뭔가를 드러나게 하려고 빛으로 오셨다. 성전을 보이게 줬는데 그 의미를 드러나게 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알 재간이 없다.

그러니까 이 말은 그 율법이, 성전이 담고 있는 하늘의 의미를 드러나게 한다는 뜻이다. 그들을 선지자라고 한다. 그럼 주님은 선지자로 오셨다. 그럼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주님이 나에게 그 의미를 드러나게 해 주면 나도 다시 그 드러난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게 해 준다. 그럼 나도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내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그런 됨이 되어야만 완성이라고 한다.

셋째,  복음 전하는 자. 유앙겔리스테스. 이 단어는 2097유앙겔리조에서 왔다. 좋은 소식을 전하다. 복음을 전파하다. 이 단어는 '유+앙겔로스' 이렇게 합성어다. 유는 '좋게, 선하게' 그런 뜻이고 '앙겔로스'는 '소식을 가져오다'라는 뜻이다.

즉 좋은 소식(진리)을 가져오는 자라는 뜻이다. 그럼 일차적으로 진리를 가져오신 분은 예수그리스도다. 그 분이 진리의 소식 좋은 소식을 가져오셔서 나에게 전해 주셨다. 그러면 내가 그 좋은 소식이 되고 그 좋은 소식인 진리를 역시 나도 가져다가 전해주는 자 즉 앙겔로스가 된다. 그럼 나도 역시 복음 전하는 자인 것이다.

그 다음이 목사와 교사다. 포이멘과 디다스칼로스. 이건 같은 것인데 일단 목사라는 단어 '포이멘'은
목자라는 뜻이다. 이건 구약에서 히브리어로 7462라아 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라아는 7451라+헤(철자의 이름) 이라고 할 수 있다. 7451라는 '악, 이웃, 소리, 형제, 생각' 이런 뜻으로 번역하는 단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이 하늘의 진짜 선(토브)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보이는 것으로 주실 수 밖에 없다. 그건 성전(율법) 뿐이다. 그래서 그 성전을 악이라고 한다. 7451라 

그래서 그것을 선에 비교해서 악이라고 하고 우리에게 가까이 준 것이니까 이웃이라고 한다.
또한 소리가 없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소리이기도 하고
그것을 우리의 뜻으로 그냥 봐 버리면 우리의 생각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 7451라 와 말하다는 뜻의 '헤'가 붙으면 '악을 말하다, 성전을 말하다, 이웃을 말하다' 이런 뜻이 되는 것이다. 그걸 목자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목자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으로 주신 성전, 즉 악으로 주신 그 성전 이웃으로 주신 그 성전을 가지고 진리를 말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목자 , 성전을 가지고 진리로 말해야 하는 자가 성전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을, 성전을 가지고 이 땅의 것으로, 율법을 율법으로 그냥 전해버리면 그건 목자라는 말의 의도가 있는데 그걸 모르고 그냥 자기 뜻으로 전해버리는 악한 말을 가진 목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럼 그 악한 말을 하는 목자는 다른 사람들을 그 악한 말로 악(라)에 빠뜨려버리는 짓을 하고 마는 것이다

디다스칼로스 교사라고 번역한 말도 마찬가지다. 교사라는 말이다.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 말이 '디다스코'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배운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가르치는 것은 나의 배움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 진리를 배우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하는데 가르치는 것은 이 교사, 선생이라는 말에 적합하지 않다.

내가 진리도 모르면서 가르치면 그건 '많은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에 딱 걸린다. 여기서 많다는 말은 율법을 말한다. 율법은 많은 것이다. 많으면 그걸 천하다고 한다. 하나님은 천한 것들을 많이 이 땅에 만들어 놓고 그걸 하나로 알라고 하신다. 많으면 둘이고 그걸 하나로 만들면 그게 가장 큰 것이다. 진리다. 이걸 알지도 못하고 선생이 되면 즉 많은 것 밖에 모르면서 가르치는 선생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목사 혹은 교사라는 말도 다 그 진리가 된 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호 하기오스 성도를 온전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12절에 이어진다. 그 그리스도의 소마 육체, 즉 율법을 오이코도메 즉 성전을 세우는 것이고(성도 안에 그 진리를 세우는 것이 진짜 성전을 세우는 것이니까 이렇게 말한다) 디아코니아 즉 섬김의 일(주님이 성도 안에 진리를 세우기 위해 섬기로 오셨다)로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