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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설교문

너에게 아이테오(구)하는 자에게

by 다바르아마르 2020. 3. 2.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ajggareuvw)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uJpavgw)

 

간디가 산상수훈을 좋아했다고 한다. 간디는 오늘 본문을 무폭력의 메시지로 보았을 것이다. 이 말씀을표피적으로만 보면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참아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 더 해주라~ 그런 말씀으로 들리지 않는가?

물론 당시에는 로마가 유대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 로마 식민지법으로 그런 법이 있었다고 한다. 로마 군인들은 식민지 백성들에게 부역을 시키는데 아무에게나 오리 정도는 요구할수 있는 법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로마법을 지키라 해도 심기가 불편할텐데 오히려 그들이 1마일을 요구하면 두배로 그렇게 하라? 심기가 이만 저만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로마에게 반란을 꾀하고 있는 열심당원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말씀으로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는 아니었다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정치적 혁명가로 많이 보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은 로마인들이 그런 부역을 요구하면 오리가 아니라 십리까지도 동행해주라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많이들 해석을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고용주가 8시간일하라고 하면 16시간이라도 해주어야 하는가? 매일 야근이라도 해주어야 하는가?

우선 성경원문에는 오리, 십리라는 말이 없다.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에서 오리로 번역을 했는데 사실은 <밀리언 에이스>이다. 밀리언은 1천 걸음에 해당하는 1마일이다. 10리가 4km이니까 오리는 2km정도 되는데 1마일이면 약 1.6km가 된다. 그래서 비슷한 수치로 오리라고 번역을 한 것 같다. 성경을 번역할 당시 십리, 오리, 이렇게 라는 척도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십리이든 2마일이든 이 말씀의 요지는 앞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이 말씀은 눈에는 눈에대한 반제의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른뺨을 치면 왼편을 돌려대고, 속옷을 요구하면 겉옷까지 주라는 말씀과 같은 것이다. 즉 오른쪽/왼쪽, 속옷/겉옷과 같이 온전한 자기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온전한 수치를 당하는십자가를 말하는 것이다.

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ajggareuvw)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여기에서도 앙가류오라는 단어를 쓴다. 앙가류오~ 우리나라 말과도 비슷하다. 앙갈레~하는데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구레네 사람 시몬도 이 로마법에 의해 강제로 부역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몬에 앙가류오해서 예수의 십자가를 진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말한 듀오이다. 기꺼이 십자가를 지라는 말이다.

동행하다고 번역된 휘파고(5217 uJpavgw )는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나타낼 때 많이 쓰던 말이다.

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13:33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13:36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6: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지금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눈에는 눈!은 대표적은 율법적인, 이분법적인, 분리적인 사고이다. 이것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죽음이다. 십자가이다를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언뜻 보면 돈을 꾸어달라고 하는 사람을 거절하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그러니까 누군가 내게 구하면 주고 꾸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라는 말일까? 이 말대로라면 걸인들이 와서 달라는 대로 다 내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내게 돈을 꾸어달라고 하면 무조건 다 꾸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못해준다. 이 말씀대로라면은행에 근무하는 기독교인은 모두 무조건 돈을 꿔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말씀도 눈에는 눈! 이라는 맥락과 전 문맥을 고려해보면서 생각을 해야 한다. 전 문맥은 모두 예수께서 먼저 오른 쪽 뺨을 맞고, 먼저 옷을 다 내어 주고, 또 둘로 동행(짝으로 동행)해준 내용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그리고 그 죽음과 연합된 나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을 돈을 원하는 사람한테 다 꿔주어라는 말씀을 들릴지 모르지만 원문은 너를 넘겨주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본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직역/너에게 청구하면 너를(목적격) 넘겨주라! 그리고 너로부터 빌리고자 하는 자를 외면하지 말라! 등돌리지 말라!

청구하다라는 동사는 아이테오를 쓰는데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할 때 그 구함이다. 즉 하나님께 약속한 그것! 내게 주세요! 그럴 때 쓰는 단어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빚을 진 것이다. 빚을 청구하는 자가 성도인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빚은 단순히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사랑의 빚이다. 하나님이 그 사랑을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이제 누군가 너에게 구한다면 너를 넘겨주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우선 사랑의 빚을 지셨다. 자신이 먼저 약속(그리스도)을 하셨고, 그것을 구하라고 하시고 찾으라하시고 두드리라 하셨다. 그 결과 받은 선물이 그리스도요 사랑이다. 그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 성도들은 사랑의 빚을 진 자들이다. 이제 성도가 섬겨야 할 이다. 은 백성들에게 빚을 진 자이다. 그 사랑(그리스도)을 넘겨주어야 한다. 그러니 기꺼이 그 진리를 넘겨주어야 하는 것이다.

꾸어줄 수 있는 사람은 가지고 있어야만 줄수 있는 법이다. 살인/간음/이혼/맹세 이러한 율법 속에서 사랑을 넘겨받은 자만이 너를 넘겨줄 수 있다”. 너를 넘겨준다고 말할 때 그 너는 존재의 개념이 담긴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존재들을 성경에서는 물댄 동산으로 표현을 한다.

58:11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그가 이제 물댄동산이 되었기 때문에 그 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디도미 할 수 있는 것이다.

벧전3: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그래서 구하는 자에게 항상 대답할 것을 예비해야한다. 그 의미가 바로 악인을 대적하지 말라! 직역하면 악인들을 진리로 세우라는 말이다. 그들이 바로 가난한 자들이다. 결핍의 우물에 있는 자들에게 끊이지 않는(속이지 않는) 물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여러분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20:35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6: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세상나라와 하나님나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세상나라는 왕에게 계속 바쳐야하는 것이다. 왕은계속 뭔가를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백성들에게 계속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리사랑의 나라이다.

그래서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고 진리도마찬가지이다. 흘러가고 나누어질 때 내가 점점 더 부유해지는 것이다. 결국사랑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이 사랑으로 결론을 맺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