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한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 불평했다. 그러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주신 것이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다(민20:8). 그런데 모세는 지팡이로 두 번 쳐서 물이 나오게 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나를 믿지 않았고,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로 결국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좀 들어가게 해주시면 안되는가?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명령하여 물을 내라는 것과 지팡이로 두 번 치는 것과 무슨 차이일까? 이것이 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 될까?
먼저 모세의 지팡이는 무엇인가? 모세는 기적을 일으킬 때마다 항상 지팡이를 사용했다.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고, 지팡이를 나일강에 담그자 나일강이 피로 변했다. 그리고 각종 재앙은 지팡이와 함께 임했다. 그러나 참으로 연약한 인간은 항상 보이는 것을 숭배한다. 그들에게 모세의 지팡이는 또 하나의 신이 되어 버렸다. 지팡이 뒤에 하나님을 보아야 했다. 하나님은 보이는 것과 구별된다. 그것이 거룩이다.
믿음이 연약했던 모세에게 처음에는 지팡이를 통해서 눈으로 보여 주었지만 이제는 지팡이는 손에만 잡고 “말로” 명령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말씀이다. 그 말씀의 능력을 직접 보이시길 원하셨다. 그런데 모세가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모세는 지팡이를 버리지 못했다. 이 지팡이는 보이는 것의 상징이었다. 모세는 끝까지 이 보이는 것을 놓지 못했다. 무엇인가 보이는 것이 있어야만 했다. 모세는 하나님을 보기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등만을 보여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신데 도대체 등은 무엇일까?
성막의 관점으로 보면 모세는 분향단 위치에 있다. 휘장은 이스라엘의 지도상 요단강과 평행선상으로 놓을 수 있다. 요단강을 넘어갈 때 보이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 우리가 흔히 요단강을 죽음으로 많이 비유한다. 죽음을 비유할 때 요단강을 건넌다고 한다. 그 요단강을 건너갈 때 이 세상의 것을 모두 내려 놓아야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보이는 것을 의존하면 안된다. 천국으로 비유되는 가나안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곳이다. 요단강을 건널 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방법으로 건넜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 전혀 이해되지 않는 방법으로 성이 무너졌다.
그 위대한 모세도 이 지팡이를 놓지 못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화를 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마치 자신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령한 것이 아닌 지팡이를 사용했다. 아직까지 모세가 완전히 죽지 않은 것이다.
죽어야 하나님을 본다. 자신의 자아가 완전히 죽어야한다. 세상의 관점, 언어를 모두 포기해야 한다. 가시적 세계의 것을 모두 버려야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지금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능력이 나타나면 자신의 지팡이 때문인줄 안다. 그것을 버려야한다. 목회자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목회자의 카리스마 그것은 모세의 지팡이이다. 목회자들이 모세의 지팡이로 불을 내려도 주님은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하신다(마7:21).
우리의 신앙의 여정도 그러하지 않은가? 처음에는 기적적인 체험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그 체험이 동기가 되어 신앙생활을 하는데 계속해서 보이는 기적만을 바란다면 어떻겠는가? 하나님은 성장하길 원한다. 성장은 보지 않고도 믿는 상태이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러할 때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그 영을 보게된다.
신앙의 초기에 있다면 지팡이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이제 휘장의 거의 근처에 갔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지성소에 들어가야 되지 않겠는가? 그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이제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 들어가야 한다.
말씀!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요, 능력이다!
보이는 것을 버리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한다.
당신의 지팡이를 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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