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40)
여기서 지극히 작다라고 해석한 단어가 '1646엘라키스토스'이다. 작다는 것은 큰 것이 있다는 말이다. 성경에서 메가스 즉 큰 것이라는 의미는 하늘의 것을 말하고 작다는 것은 땅의 것을 말한다. 그런데 작은 땅의 것이 없으면 하늘의 큰 것을 알 수가 없다. 큰 것은 보이지 않지만 작은 것은 눈에 보이게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까 해석해 보면 '그 지극히 작은 것을(땅의 것을, 성전을, 율법을) 하나 안에서(헤이스, 하나는 그 지극히 작은 것들, 땅의 것들을 진리로 되게 만들면 하나다) 그 형제들을 되게 만든(포이에오) 것이 곧 내 안에서 되게 만든(포이에오) 것이다. 이런 말이다.
우리나라 번역은 마치 작은 형제 하나를 내가 잘 선대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잘 대접한 것이라는 뉘앙스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그런 말이 아니다. 우리는 작은 것(땅의 것)으로 큰 것, 하늘의 것, 진리를 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곧 하나님 안에서 되게 만든 것이다. 그런 말을 이렇게 해석을 해 놓았으니 많은 사람들이 그 의도를 알 리가 없는 것이다.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피스토스 엔 엘라키스토스... 그러니까 지극히 작은 것(엘라키스토스) 안에서 믿음인 자는... 이런 말이다. 엔 폴뤼스 피스토스 에이미... 우리나라 말로 '큰 것'이라고 번역한 단어가 '폴뤼스'다. 이건 엘라키스토스를 다시 말한 것이다. 폴뤼스는 많다는 뜻이니까.. 다시 번역하면 '많은 것 안에서 믿음이다' 그런 뜻이다. 즉 작은 것이 곧 많은 것이다. 땅의 것은 작은 것이고 그건 많다. 많아서 몇 개인가? 두 개다. 이 땅의 것은 많아야 둘이다. 율법은 둘로 나누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작은 것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땀흘려도 되지 못할 '피스토스' 믿음을 되게 해 주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이 '엘라키스토스 안에서 불의한 자는' 즉 엘라키스토스(지극히 작은 것)가 '아디코스'(불의)라는 말이다. 불의한 엘라키스토스 안에 있는 자는, 불의한 많은 것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엘라키스토스(지극히 작은 것)에서 큰 것이(하늘의 것, 진리) 된 자들의 이름이 피스토스(믿음인 자)다. 그런 뜻이다.
우리는 이 땅의 것, 나타낸 것, 많은 것인 지극히 작은 것을 통해 그 하늘의 것, 큰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목적이고 그것이 되면 즉 엘라키스토스를 통해 하늘의 진리가 되면, 내 안에 그 진리를 가지면 그러면 그들을 믿음인 자라고 한다.
피스토스(믿음) 즉 믿음인 자, 그러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진리가 있기에 즉 내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와 하나가 될 때 그러한 자를 믿음인 자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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