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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기도 말씀

주인의 빚을 탕감해주는 불의한 청지기

by 다바르아마르 2020. 1. 17.

눅16: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불의한 청지기가 칭찬 받는 이유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에게 칭찬을 받은 이유는 그가 행한 일 때문입니다. 그가 행한 일이 무엇이고, 그것이 왜 주인의 칭찬을 받았는지 5절 이하를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눅16: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에게 빚진 자
주인에게 빚진 자 두 명이 나옵니다. 첫째 사람은 “기름 백말”을 빚졌고, 둘째 사람은 “밀 백석”을 빚졌습니다. “기름 백말”을 빚진 자에게는 “오십”이라고 쓰게 했고, “밀 백 석”을 빚진 자에게는 “팔십”이라고 쓰게 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 결론이 나옵니다. 그가 칭찬 받는 이유는 지혜 있게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진리로 일했다는 것입니다.

눅16: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크레오페일레테스” 5절에 빚진 자가 있는데, 원문으로 보면 “크레오페일레테스”입니다. 이 단어는 “크라오”와 “오페일레테스”의 합성어 인데, “크라오”는 “빌리다, 빌려주다”라는 뜻이고, “오페일레테스”는 “채무자, 빚진자”란 뜻입니다. “크라오(빌리다)”는 누가복음에서 딱 한 번 사용되었습니다.

눅 11: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크라오”, “크루오” 이 “크라오”가 어디서 왔는지 살펴보니까? 마7:7절 이하에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 할 때 “문을 두드리다” 즉 “크루오”에서 왔습니다. “크루오”는 단순히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언약, 약속 안에서 두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밖에서 두드리는 신호를 보내면 안에서 약속된 신호인지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는 차원입니다. 만약 약속된 신호가 아니라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눅 12: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계 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사랑의 빛 빚진 자라는 “크레오페일레테스”는 하나님과 언약 안에 있는 “빚진 자”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나의 빚을 진자이다. 그런데 그 빚은 내가 너희에게 약속이라는 것을 건네주기 위한 빚이란다.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단순히 고리대금업자가 돈을 뜯기 위해서 지우는 빚이 아니라, 그 빚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언약을 건네주기 위한 수단과 방법과 과정으로서의 빚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빚”은 돈을 갚는 차원이 빚이 아니라, “사랑의 빚”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서가 빚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했습니다.

롬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은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라 율법의 완성입니다.
살인하며, 간음하며, 도둑질하며, 거짓말하며, 탐내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사랑의 빚을 지게 함으로 나를 통해, 나에게서, 율법을 내용으로 완성하시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휴머니즘이 말하는 그런 인간애가 아니라, “율법의 외현을 통해 하나님께로 저당 잡히는 것”을 “사랑”이라 하는 것입니다. 율법과 대조되는 사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내용으로 사랑이 전달되고, 확인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라,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사랑의 내용이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뜬 구름 잡는 휴머니즘적인 인간행동이 아닙니다.

두드리면 열릴 것 마태복음7장에서 문이 누구에게 열린다고 합니까? 두드리는 이(크루오)에게 열린다고 합니다.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이 흘러나온 것처럼, 문을 두드리면 하늘의 문이 열려 생명이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늘의 문을 두드렸고, 진리의 하늘이 찢어져(열려) 우리에게 성령의 생수, 진리의 말을 건네주신 것입니다.

사랑을 건네주기 위한 빚
그러니까 본문에서 말하는 빚진 자 “크레오페일레테스”는 고리대금업자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빚을 주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건네주기 위한 빚을 의미합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그 의도를 알았기 때문에, 주인의 것으로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의하지만 지혜로운 청지기라고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헌신 성도는 이렇게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로운 헌신으로 하나님의 빚을 탕감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그 빚을 서로에게 탕감해주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오페일레테스)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에게 빚진 자를 마태복음 6:12절에서 말하는 죄는 “하마르티아”가 아니라 “오페일레테스”입니다. 정확한 번역은 “빚진자”입니다. 직역하면 “우리를 자유롭게 하소서(아피에미)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자유롭게(아피에미) 한 것처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빚을(율법의 의무, 저주, 빚) 탕감 받았기 때문에 다른 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가 기도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해석을 빌리자면 율법의 내용을 잘 건네주어서 그를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자, 즉 사랑의 빚을 건네주는 자라는 것입니다.

기름 백을 오십으로
이렇게 주인에게 빚진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기름 백말”을 “오십”으로 “밀 백석”을 “팔십”으로 쓰라고 한 것입니다. 백은 헬라어로 “헥카톤”입니다. 백은 완전한 충만, 하나님 인간에게 열매로 요구하는 수를 상징합니다. 땅에 떨어진 씨를 백배가 되고, 땅을 일구는 농사로 백의 열매는 맺는 것입니다.

마 18: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막 4: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눅 15: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창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기름과 말씀
그런데 기름이 백이라고 합니다. 헬라어로 “엘라이온”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정말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레 2:15]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찌니 이는 소제니라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마 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약 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기름, 금, 말씀, 영 성경에서 기름은 금이고, 금은 말씀이고, 말씀은 영입니다. 그래서 기름 부음을 받는 것과, 말씀을 받는 것과, 영을 받는 것이 같은 것입니다. 영은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하여 교회에게 임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영이라고 합니다.

다섯으로 설명되는 구속사 그러니까 기름 백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으로 부어져 우리로 열매 맺게 하는 말씀의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의한 청지기는 어떻게 했습니까? 기름 백을 오십으로 쓰라고 했습니다. 오십은 “펜테콘타”인데 “다섯”을 의미하는 “펜테”에서 왔습니다. 다섯은 당연히 모세오경, 율법을 상징한다 했습니다. 그 율법이 죽고 영의 말씀으로 임한 사건이 오순절 성령강림입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50일이 지난 날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금송아지 사건으로 3000명이 죽었던 그날인데,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 오순절이 되던 날 성령이 임하여 3000명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오순절은 유대절기로 보리를 추수하는 일인데,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추수되는 날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믿고, 성령을 받아 그 진리의 말을 담으면 영으로 거듭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를 성도, 교회,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자 등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밀 백석을 팔십으로 밀(양식, 말씀) 백석은 팔십으로 쓰라고 합니다.(팔십도 팔에서 왔습니다). “팔”은 당연히 노아의 호수에서 구원 받은 수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 즉 “칠”의 언약을 받은 자가 이 역사를 살아가는 성도의 “구원의 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매로 맺어지는 그 “백”은 “팔”이라는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완성된다는 의미입니다. (할례는 육체로 태어난 지 팔일에,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즉 여덟 번째 날에 부활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
이 모든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 말씀의 지혜를 알고 있었던 청지기는 그 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불의한 청지기로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 자체가 이 세상의 윤리와 도덕과 관습과 통념으로 볼 때는 “불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불의 한 일을 하나님이 행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눅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하나님의 구원은 뱀의 지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자들을 향해서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한 것입니다.

그 구원의 지혜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영으로 임한 그 사건에 대해서 아예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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