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율법과 산상수훈 26절은 산상수훈을 해석하는 아주 중요한 열쇠입니다. 산상수훈은 구약의 산, 그러니까 시내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율법을, 그 율법의 원형이시고,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재해석하여 그의 제자에게 가르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을 신약으로 해석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말씀이고, 모세가 궁극적으로 전하였던 그 율법의 진의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설명되는 “십자가의 의”라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이 바로 마태복음 5:26절이기 때문입니다.
성경과 언약 구약 백성에게 주신 율법은 단순히 도덕적 계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상징하는 언약입니다. 성경을 언약으로 그 진의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그 언약의 당사자이며 내용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는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죽음의 사건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려 죽은 사건이며, 그 저주는 곧 우리의 저주인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진리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만 하나님의 그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3: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1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들 사도 요한은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예수 믿지 않는 자, 불신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의를 행하기 위해서, 혹은 그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의” 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형제”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의를 행할 수 있으며,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사랑하며, 사랑의 대상이 정확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그 형제”는 불특정 다수나, 우리 주의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전도의 대상자도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그 형제를 우선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푼을 갚아 야지 거기서 나온다!
26절의 명제는 산상수훈과 신구약성경 전체가지도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26절은 두 명제로 되어 있습니다.
1.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2.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깊기 전에는
형제를 살인 하는 자 예수님은 우리의 현실을 거기서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기”는 어디이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읽고, 공부하고 있는 문맥이 무엇이죠? “살인”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 문맥입니다. “살인”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차원이 아니라, 성전 마당에서 반복적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생제를 계속 드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적 현실이 바로 “형제를 살인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형제로 오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성도의 필연을 말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살인 하는 장소 희생제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의 장소, 곧 에덴동산 밖, 애굽, 성전 마당이라는 하나님의 은혜 밖의 장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바로 형제를 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제로 오신 예수를 죽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절망적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경험하는 성전 마당이 바로 예수님이 나오라고 한 “거기”입니다.
계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애굽과 소돔 성전 마당, 희생제사 드리는 그곳, 바로 거기서 나와야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희생제사를 드리는 그곳을 영적인 의미로 애굽이라고도 하고, 소돔(바벨론)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를 위해 온 형제를 살해할 수 밖에 없는 거기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11: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거기서 나온 자들
그러면 거기서 나왔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가 왜 희생제사의 어린 양으로 오셔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 예수가 왜 희생제물로 죽어야만 했는지, 그 예수의 죽음이 나에게 어떤 능력과 힘을 건네주었는지 아는 것이고 실제로 예수가 건네준 그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이 있을 때 거기서 나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한 푼이라도 남김없이 다 갚는 자들 거기서 나온 성도에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 푼이라고 남김없이 다 갚는 것”입니다. “한 푼”은 헬라어로 “코드란테스”이고, “남김없이” 즉 “마지막 하나”는 “에스카토스”입니다. 한 푼으로 번역된 “코드란테스”는 원래 과부가 낸 그녀의 생활비 전부로 설명된 단어로 당대 화폐단위입니다. 과부가 낸 두 렙돈 즉 한 고드란트는 그녀의 생명 전체입니다.
막 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눅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받으시는 마지막 하나 한 푼(코드란테스)이란 우리로 하여금 살게 하는 마지막 하나, 근본으로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면 나오는 그것 마지막 하나를 “한 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과부 즉 이 세상에서 남편이 없는 그녀가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 그녀의 생명 전체라는 것은 그 마지막 하나, 그녀를 살게 하는 그 마지막 하나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은 그녀가 수도정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녀에게 건네준 그것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그녀에게 준 마지막 하나, 생활비 전부, 생명전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 하나님이 인간에게 받으시는 유일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머리로 받은 자들을 교회(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엡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예수의 머리를 건네받은 교회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건네주시는 것은 오직 이것 하나로 수렴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는 이것 하나라는 것입니다. 과부는 그것을 주님께 받았기 때문에 있는 그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이고, 바리새인, 유대인들은 풍족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사랑이 없음) 하나님이 머리로 건네주신 것을 또한 십일조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온전한 십일조로 풍성한 곳간 이렇게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시는 마지막 하나, 그것을 사랑이고 하고, 십일조라고 하고, 하나님의 머리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마지막 하나로 번역된 헬라어가 “에스카토스 코드란테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스카토스”는 “남김없이”로 번역된 단어로 ”맨 끝의, 마지막의, 가장 작은“ 이란 뜻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구약의 율법으로 주신 마지막이 무엇입니까? 10계명 중 마지막 10계명이 바로 ”탐심“입니다.
출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사랑의 완성 결국 탐심을 다 갚아야지만 희생제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 율법의 감옥, 성전 마당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탐심이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사랑인 것을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우리의 탐심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환원하심) 그래서 예수님이 10계명 중에서 앞에 5개를 뒤의 5개의 계명으로 다시 설명해 주시는 것이 신약입니다. 그 5개명의 소위 대인 계명을 4개의 계명으로 설명해 주시고 그 4개의 마지막 하나를 “사랑”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형제를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다 지키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그렇게 많이 나온 계명을 지키면 천 때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약속은 무엇이겠습니까? 물리적으로 진짜 천대의 자손까지 은혜를 베푸시고, 천1대부터는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마음으로 지키는 것, 곧 그의 계명이 사랑으로 인간의 마음에 있는 자에게는 천으로(구원의 완성) 건네주신다는 언약과 약속이 담겨져 있는 본문입니다.
출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요일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탐심이 사랑으로 완성됨 이렇게 마지막 하나를 다 갚아야지만, 우리가 비로소 사랑으로 완성되어 율법의 감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갚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한 그 십자가가 우리의 빚을 다 갚으셨고, 그 십자가가 탐심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나를 사랑으로 이끄시고, 완성하시는 것이 복음의 진리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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