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난 성탄절 입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날을 후대 사람들이 오늘로 정해 놓고 그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을 기억하여 반복적으로 기념해야 할 중요한 진리였다면 성경은 왜 그 날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문제를 묵상해볼 때
일년동안 장농에 보관해 두었다가 하룻동안 꺼내 입는 어떤 옷처럼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내안에서 날마다 임재로 임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사실로 오신 예수를 믿는 것 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오심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일4:2)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일1:7)
위의 두 말씀중 첫번째 말씀은 하나님의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육체"라는 예수에게 임하셨음을
두번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의 육체에 영으로 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부인하는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 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예수의 탄생을 믿으며 기념예배에 천번을 참여한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으면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하실 예수께서 왜 하필이면 짐승의 구유에 오셨겠습니까?
성경에서 짐승이라 함은 그리스도의 영을 받지 못한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 입니다.
이것을 "이성없는 짐승"이라 표현 합니다.
예수께서 짐승의 밥통에 담겨 있다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6:51)
짐승 인 우리에게 짐승의 먹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먹지않고 바라만보고 있다면 그 그리스도는 내 밖에 있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마주보고 있는 자
즉, 서로에게 대하여 대적자요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을 사람(짐승)의 탐욕을 채우는 이벤트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탄이 이미 내 안에 이루어지고 그리스도로 완성이 되었다면
외적인 형식에 매이지 않을 것이며
아직 진리로서 성탄이 내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자기 안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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