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23~24 변화된 제물, 새로운 예배
마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마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교회가기 전에 싸운 사람에게 찾아가화해하란 말인가? 싸운 사람과 화해하고 난 후에 예배를 드리라고 하는 것일까? 그런데 요즘 교회 돌아가는 것 보면 교회 밖에서 싸우는 것보다 교회 안에서 관계가 틀어져서 싸우는 경우를 더많이 본다. 그렇다면 그들은 23절의 말씀을 어기는 것 아닌가?
1435 dw'ron doron {do'-ron}
‘선물’, (특히)‘희생’, 제물 <엡 2:8>중명. gift, present;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1435 dw'ron)이라
예물로 번역된 도론(1435 dw'ron)은 엡2:8에는 선물로 번역되어 있다. 예물도 되지만 선물이란 뜻도 있다. 사실은 하나님의 그 선물을 주셨기 때문에, 그 선물을 드리는 것이 제물이다. 예물로 번역된 도론은 원래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선물인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선물인 그리스도로 예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제물에는 반드시 그 선물이 담겨 있어야 한다. 바로 그 선물이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선물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희생제물로 제단으로 메고가서 드리려<프로스페로>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여기서 네 형제가 누구입니까? 그 형제는 바로 예수님을 말한다. 그 예물을 드리다가 왜 갑자기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을 언급합니까? 원망으로 번역한카타는 원망이라기 보다는 반하여라는 뜻이다.
원망들을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너의 그 형제가 소유하고 있는 것과 네가 반대의 것을 소유하고 있다면 이라는 뜻이다.
그 형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인데, 그와 반대로 행한다면이라는뜻이다. 그 형제의 뜻과 반대로 예물을 드리는 것이다. 즉 선물을 선물인 줄 알지 못하고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은 형제와 반대되는 것이다.
율법시대에는 희생제사는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이다. 그런데모든 희생제사는 사실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예물이 아니라 선물이 되는것이다. 그것을 선물로 보는 자는 더 이상 예물이 아닌 선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예물의 실체가 선물인 것이다. 그런데 선물을 알지 못하면 그 형제(예수/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와 반하는 것이다.
은혜(cavri")는곧 선물(dw'ron)이다. 선물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은혜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들었을 때 은혜받았다고 한다. 설교 듣고, 찬양하고 기분 좋아지는 것을 은혜로 착각하고 있다. 하나님은 희생제사를 선물로 주셨다.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하나님을 알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뜻(예수)은 모르고 끊임없이 희생제사를 드리면 선물을 보이콧 하는 것이 된다.
마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diallavssw) 그 후에(tovte/그때) 와서 예물을 드리라
재번역/
마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운반하다가 거기서 너의 그 형제가 소유하고 있는 것과 네가 반대의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나거든
마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 너의 예물을 제단 앞 거기에 버리라! 그리고 떠나라! 무엇보다도 먼저 너의 그 형제안에서 완전히 변화 받아라(수동)! 바로 그때 와서 너의 그 선물을 운반하여라!(이때 영과 진리의 예배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소유하고 있는 그것! 그 제물을 버리라(863 ajfivhmi)! 그리고떠나라(5217 uJpavgw) 희생제사를드린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 장소를 떠나라! 희생제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거기에서(ejkei') 떠날수(휘파고) 있다. 예물을거기에(성전에)두고 떠나라!그리고 먼저 너의 그 형제(예수)와 화목하라는말입니다.
1259 diallavssw diallasso {dee-al-las'-so}
1223과 236에서 유래;‘철저하게 변화시키다’, 즉(정신적으로)‘조정하다’, 화해하다 <마5:24>동. to reconcile;
1223 diav dia {dee-ah'}
기본적 전치사 행위의 통로를 가르키는;(매우 광범위한 적용;지역, 원인, 경우에 있어서)‘통하여’, 후에, 항상, 가운데, ~에, 피하다, (그것)때문에, 간단히 ~에 의해서 (원인을)위해, …으로부터,안에, 경우에 따라서, 때문에, ~를위해, 그것, 그것에 의해, 그러므로, 비록, 통해서,~에게, 무슨이유로, 와 함께, 복합어에서 역시 같은 일반적 뜻을 보유한다 <요 1:3;롬6:4> Dia, <디아>2203을 보라전. through, by with;a)소유격지배시, 통하여, 말미암아b)목적격 지배시, 때문에 c)합성어 에서종종완전성을 나타낸다.
236 ajllavssw allasso {al-las'-so}
243에서 유래;‘다르게 만들다’, 변경하다 <행 6:14>동. to change;
243 a[llo" allos {al'-los}
기본어;“그밖에”, 즉(많은 적용으로)‘다른’, 더욱, 상호간에 <요 15:24>형. other, another;
다르게 만들라는 뜻이다. 철저하게 변화시키라는 말이다. 집안 식구와 싸워서 화목하게 지내라는말이 아니라 철저한 생각의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화목하라(diallavssw)는 철저하게 변화시키다. 정신적으로 조정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명령/과거/수동이다. 즉 명령인데 수동형이다. 스스로 변화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으라는것이다. 그것도 과거형이라 완성을 전제로 한 명령이다. 즉완전히 변화되어 져라!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다. 즉 회심과 같은 의미가 화해이다. 전면적인 의식의 전환이다.
tovte: 그 후로 번역되었는데 정확하게 번역하면 그 때이다. 즉, 그 형제 안에서 완전히변화된 때이다. 그때 prosfevrw해라. 즉 드리다로 번역되어 있지만 사전에는 운반하다이다. 정신적으로 철저히 변한 그때 운반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화목한(깨닫고변화된 후) 때!!! 제물이 달라지는 것이다. 변화된 제물을 데리고 오는 것이다. 제물이 변화된다는 말은 무슨말일까? 소/양이라는 겉의 제물에서 진정한 제물로 바뀐다.
제물을 통한 회심! 이것을 이해하게 해주는 사건이 모리아사건이다.
하나님은 왜 이삭을 바치라고 하였을까? 하나님은 무엇을 시험하려고하셨을까? 단순히 아브라함을 테스트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교훈하려고 준 사건이다. 이 모리아 사건이야말로 우리에게 제물이 바뀌는 바로 그때, 토테의 순간을 만들어준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제물이 선물로 바뀌는 순간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모리아산을 올라갔다. 이삭이라는 아들은 아브라함에게 있어, 보이는 것 중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아들을 죽여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을 직접 죽이지 않았다. 바로 양이 대신해서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양은 아브라함의 죽음! 이삭의 죽음! 그 죽음을 대신하는 죽음이었다. 그것이 곧 유월절 양이다. 곧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이다. 그 그리스도가 선물이요 참된 제물인 것이다. 그것을 십일조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전면적인 변화를 받은 것이다.
그것이 디알랏소이다. 회심이다.하나님과 아브라함이 한 마음되는 순간이다. 바로 그때이다. 하늘과 땅이 하나된 순간이다. 토테이다. 그 순간 모리아산에서 이삭에서 양으로 제물이 바뀌는 순간이다. 예물에서 ‘양’이라는 선물이 주어진다. 이것이 본래 희생제사의 의미이다. 참된 희생제사를 알려주는 사건이다. 희생제사를 통해 여호와 이레, 즉 여호와가 준비한 선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아브라함은 육체를 죽이고, 영으로 살림을 받은 것이다.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다. 그가 이삭을 물리적으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곧 이삭의 죽음을 뜻한다. 또한 아브라함 자신의 죽음을 뜻한다. 그렇게 죽었을 때 양을 선물로 주신다. 즉 육으로는 죽임을 당할때, 영으로 살림을 받은 것이다.
디알랏소! 전면적인 변화를 뜻한다. 어떤 변화? 형제의 뜻과 같아지는 것이 진정한 변화이다. 형제(예수)의 뜻은 무엇인가?
그렇게 그 형제와 뜻이 같아질 때 바로 그때 참 예물을 드리라는 것이다. 그때 참 예배가 되는 것이다. 참 예배는 동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닌 영과 진리의 예배이다. 그 형제와 화목하기 전에 드리려고 했던 예물은 희생제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형제를 통하여 완전한 변화되는 순간! 그때 드리는 예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예물이다.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다른 차원의 의이다.
즉 화목하기 전의 예물은(선물인줄을 모르고)내가 하나님께 준비해서 드리려고 했던 희생제물이었다면 이제 형제와 화목하고 나서 드리는 예물은 바로 이 예물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드리는 예물이다. 내가 받은 선물! 그 선물이 그리스도이다. 현대로 표현하면 돈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그게 십일조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성경이 주어진다. 성경을 통해서 율법이라는 것이 주어지고, 희생제사라는 것이 주어진다. 모든 성경의 표적과 기사, 희생제사는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고, 그 그리스도는 우리를 죽음으로인도한다. 그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 부활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예물이 선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럴 때 “변화의 선물”을 하나님께 운반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리를 알면 잘못된 ‘드림’을 그만하고, 진정한 선물을 하나님께 드리게 된다. 물론 그 선물은 십일조인 그리스도인 것이다.
모든 종교의 핵심은 신에게 무엇인가 드린다는 것이다. 그 드림에는반드시 무슨 목적이 있다. 고상한 목적은 구원과 화목이고, 저급한목적은 번영과 축복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오셔서 그런 종교와 싸우지 않았는가? 대표적인 것이 성전으로 대표되는 희생제사를 없애셨다. 사도 바울은 희생제사로 대표되는 율법적 신앙과 한 평생 싸웠다.
여전히 헌금을 제물로 생각한다. 십일조가 신앙의 좋은 기준이 된다. 예수께서 풀어준 멍에를 다시 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진리는 선물이다. 구원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다(엡2:8). 그러므로 그냥 받으면 된다. 아버지는 그냥 선물을 받길 원하신다. 그것이 예배이다. 예배를 드린다고 표현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예배는 모두 우리가 하나님께 선물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선물을 모르면 드리는 의식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모양만 다를 뿐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 열심히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예배가 아니다.하나님의 그 선물을 발견하는 시간이 예배이다. 아브라함이 내가 그를 보았다! 여호와 이레를 외치는 시간이 예배이다. 그렇게 말씀을 듣는 시간은 하나님의 기도시간이다. 그리고 그 기도에 반응하는 것이 찬송이다. 감사의 표현이 찬송이다. 하나님이 무엇이 아쉽겠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돈을 원할까?
하나님이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 그 선물로 예배하는 것이다. 그 선물은 무엇인가? 진리와 영으로 예배한다. 그래서 진리와 영이 선물이다. 그 선물이 제물 되는 것이다. 예배는 그분이 영이시기에 내가 그 영, 즉 그 진리로 아니면 할수 없다. 따라서 은혜아니면 불가능하다. 아버지가 먼저 찾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동전이 스스로 찾는 것은 아니다. 양이 스스로 기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먼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 전제가 된다. 그렇게 선물로 주어져서 예배가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인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요4:24의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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