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22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심판도, 공회도, 지옥불도 모두 에노코, 안에 소유하는 것이다. 심판, 공회, 지옥을 내안에 소유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형제에게(여격/단수) 노하는 자/심판/에노코스
둘째 형제에게(여격/단수) 라가(텅빈머리/멍텅구리)라고 말하는 자/공회/에노코스
셋째 형제에게(여격/단수) 모로스(바보)라고 말하는자/지옥불/에노코스
왜? 그 형제에 대해 노하고, 멍텅구리, 바보라고 했기 때문이다. 살인에 대해 너희는 들었으나 나는 말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살인하지 말라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형제를 어떻게 취급하느냐가 ‘살인’과 관계가 있다. 먼저 이 형제가 누구인지가 밝히는 것이 해석의 key가 된다. 그 형제가 누구일까?
형제는 사전적 의미(겉말)는부모가 같은 형과 아우를 형제라고 한다. 즉 피를 나눈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는 형제에 대해 달리 정의를 한다.
막3: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막3: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막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막3: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막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델레마/소원)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마가복음 3:35에 의하면 피를 나눈 사람이 형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라고 했다. 더 정확히 번역하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룬 자/성취한 자를 형제, 자매, 어머니, 즉 가족이라고 한다.
만약 22절의 이 형제가 불특정 다수라면 복수로 쓰여졌을 것이다. 그런데 본문은 단수로 되어 있고 더구나 관사(호)가 붙어있다. 그의 그 형제(하나님의소원/약속을 성취한 자)는 그렇다면 누구를 뜻할까? 하나님의 소원, 약속을 성취한 단수의 그 형제는 누구인가? 바로 약속을 상징하는 제라! 그 단수의 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관사 붙은 단수는 대표단수이다. 그 대표단수의 형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따라서 이 예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심판/공회/지옥불이 결정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 형제가 예수이기 때문에 그 형제에게 노하는 것이 심각한 것이 되는 것이다.
왜?
[요 15:23] 나를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요 15:24] 내가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요 15:25] 그러나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710 ojrgivzw orgizo {or-gid'-zo}
3709에서 유래;‘자극하다’, 또는‘화를 내다’, 즉(수동태)‘격분 시키다’, 화나다(격노하다)<눅 14:21>동. to be angry;
올기조한다는 것은 자신의 뜻과 맞지 않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눅 15:28)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눅 15:29)
큰 아들이 화를 내고 있다. 왜? 아버지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가? 큰 아들은 아버지를 잘 섬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집을 나가서 가사를 다 탕진했는데 왜 그를 위해 잔치를 벌어느냐?는 것이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명을 어긴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명을 어긴 적이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집을 나간 적은 없지만 아버지를 대적하고 있다.
여기서 이 맏아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비유하고 있고 집나갔다 돌아온 탕자는 세리와 같은 죄인들을 비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탕자는집은 나갔지만 아버지에게 있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 맏아들은 그렇게아버지 집에서 여러해 같이 살았지만 아버지에게서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올기조>노한 것이다.
그러니까 형제에게 <올기조>한다는 것은 그 형제와 뜻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형제,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 그런데 그 형제에게 올기조 한다는 것은 그가 전한 진리에 대적하는 것이다. 진리를 대적하면 그 자제로 심판인 것이다. 그러면 자기 안에 공회를 설치해서 다른 사람을 지옥불로 살인하게 된다.
4469 rJakav rhaka {rhak-ah'}
기원은 아람어【7386과 비교】;‘어리석은 사람’, 즉‘머리가 텅빈’(비방하는 말), 라가 <마5:22>남명. emptiness;
qyre(7386, 레크, 형용사)는 리크(qyri , 7385)에서 유래했으며, '빈, 공허한 empty, 헛된, 무익한, 가치 없는, 쓸데 없는' 을의미한다. 텅빈 머리라는 뜻인데 말하자면 “멍텅구리”라는 뜻이다.
창 41:27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소는 칠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해 흉년이니
속이 텅빈 이삭처럼 속이 텅빈사람을 경멸할 때 쓰이는 표현이다.
그와 유사한 단어가 모로스이다.
3474 mwrov" moros {mo-ros'}
아마 3466의 어간에서 유래;‘둔한’, 또는 ‘어리석은’(마치 꽉 막힌), 즉 ‘부주의한’, (도덕적으로)‘얼간이’, ‘불합리한’(인것 같다), 바보(스러운, 스러움) <마 25:2>형. stupid;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바보가 된다고 할 때 그 바보이다.
3471 mwraivnw moraino {mo-rah'-ee-no}
3474에서 유래;‘무미건조하게 되다’;상징적으로 ‘바보가 되다’(수동태;‘행하다’), 어리석음을 드러내다, 어리석게 만들다, 맛을 잃다 <롬 1:22>동. to become tasteless;
한편 "그 맛을 잃으(면)"에 해당하는 동사가 모라이노인데, '어리석다, 어리석게 행동하다, 어리석음을 보이다'를 뜻한다. 소금의 맛을 잃으면이라는 뜻은 소금이 바보가 된다는 뜻이다. 거꾸로 말하면 소금에 맛이 있다는 것은 지혜가 있다는 말이다. 즉소금을 지혜와 연결하고 있다. 당시 유대의 지혜자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예수는 지금그들이 맛을 잃었다. 즉 바보가 되었다. 지혜를 잃었다고 고발하는 것이다. 왜?
그리고 바보는 무스테리온에서 왔는데 감춰진비밀이라는 뜻이다.
3466 musthvrion musterion {moos-tay'-ree-on}
muo<뮈오>(입을 다물다)의파생어에서 유래;‘비밀’, 또는 ‘신비’(종교의식에 초대될때 부과되는 침묵의 개념으로) <롬 16:25;계 1:20>중명.mystery;
성경에서 비밀을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해서 적용된다. 그런데 언약이 이러한 비밀을 드러내지 못하면 바보가 되는 것이다. 영원한 언약을 그 안에 가지지 못하면, 그언약을 말하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그는 아무말도 못하는 어리석은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그 형제에게 라가라고 할까? 바보라고 할까? 예수의 말이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 형제(진리를 말하는 자)에게 멍텅구리라고 하고, 바보라고 하는 것은 곧 그 자신이 그 형제 안에 있는 비밀, 그 약속을알지 못하므로 멍텅구리,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그 형제는 참된 아버지의 뜻을 전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부당하게 대접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상태가 곧 심판/공회/지옥불인 것이다.
심판/공회/지옥불개념이 같다. 심판은 옥황상제 앞에서 받는 것이 아니다. 공회도 잡혀가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에 벌써 법정이 세워지는 것이다. 공회에 잡혀가는 것이 먼 미래가 아니듯, 이것은 모두 그 사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즉 심판/공회/지옥불을 갖게(에네코)되는 것이다. 만약 그 형제를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그 형제에 대하여 그릇된 욕망으로, 또 라가로, 즉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텅비어 있으면, 또 바보로 즉 비밀을 알지못하면 너희안에 지옥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옥불은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지옥불은 사람들안에 있다(에노코스). 진리를 깨달으면 하나님 나라에 있고, 거부하면 지옥불은 사람들안에 있다. 형제를 모르는 자가 지옥이다. 그리고 그 지옥이 그들이 혀를 놀리면 그것이 지옥불이 되는 것이다. “멍청이!”라고 불을 뿜기전에 내 마음이 먼저 불지옥에 떨어진다. 그렇게 재판에 넘겨진다. 일종의‘자동 재판 시스템’이다.
우리의 존재됨을 말하는 것이고, 그 존재에서 나오는 결과를 말하는것이다. 누군가에게 침을 뱉으려면, 먼저 내 안에서 침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입 안에 침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고인 침을 상대방에게 뱉는다. 누군가에게 화를 낼 때도 마찬가지다. 먼저 내 안에서 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걸 모아서 상대방에게 쏟아낸다. 그것이 지옥불이다.
■정리하자면 살인하지 말라는 말은 영혼을 죽이지 말라는 말이다. 영혼을 죽이지 않으려면 그 형제와 짝이 되어야 한다. 그 형제와 호몰로게오(같은 말을 하다) 되어야 한다. 그런데 거부하고 분내고 라카라고 하고 바보 취급하면 그게 살인이다. 스스로도 죽게 되고, 또 그 형제의 가르침을 헛되이 가르치기 때문에 수많은 영혼을 죽이게 된다. 살인하지 않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 비결이 “내가 바로 너의 형제인데 나를 받아드려라”. 내가 하는 말을 깨달으면 그 살인을 그만둘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오셔야 살인이 끝난다. 이러한 예수를 그 형제로 알지 못하면 끝임없이 살인이 일어난다.
그런데 사실 누가 예수를 믿으면서 교회서그 예수에게 노하고 바보! 멍텅구리!라고 겉으로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다 그런식으로 예수를 믿고 있다. 예수를 다 밤의 예수로 믿고 있는 것이다. 마치 니고데모처럼! 니고데모는 표적 신앙의 대표이다. 예수의 말의 진의를 알지 못하고 전부 표적, 즉 껍데기로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노하는 것이고 라가라 욕하는 것이고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살인이 일어나는 것이다.
[요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하리라
예수! 그리고그의 제자들을 죽인 자들이 누구인가? 누구에 의해서 살인이 일어났는가?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 자들이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자(올기조마이), 열심히 열망하는자(올기조마이/노한다고 할 때 올기조마이의 본래 뜻은 열망한다는 뜻). 이렇게 열심을 추구하는 자들이 앞서 너희를 출회하고 죽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인이다. 살인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이들! 가장 섬긴다고 하는이들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 살인의 예로 23절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배에 관한 것이다. 왜 앞에 살인예기를 하시고 23절 이하에 갑자기 예물에 대한 예기가나오는 걸까?
살인의 한 예로 예배(희생제사/선물)와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예수께서는 지금 진짜 예배가 무엇인가를설명하는 것이다. 예배가 살리고 죽이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잘못하면 동물을 죽이고, 결국 사람을 죽이게 된다. 성전에서살인이 일어나는 것이다. 영혼을 죽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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