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1. 왜곡된 산상수훈
모든 성경이 다 그러하겠지만, 성경은 문자적로, 표피적으로, 윤리적으로 이해하면 안 되는 책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설교자들이 성경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것이 꼭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거짓일 때가 더 많이 있다고 역사는 말합니다. 오늘날 성경에 대한 이해가 이런 보편성 속에서 진리의 진의를 왜곡하거나,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교도들이 좋아하는 성경
산상수훈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심지어 반 기독교적인 사람들까지 좋아하는 성경구절입니다. 힌두교도였던 마하트마 간디도 아침에 일어나면 이 산상수훈을 늘 읽고, 이대로 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법정 스님도 이 산상수훈은 정말 최고의 경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만큼 산상수훈의 보편적인 이해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입니다(지킬 수 있든 없든). 기독교와 교회와 예수 믿는 자들은 싫어도 예수와 예수가 한 말은(산상수훈) 좋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산상수훈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도덕이나 윤리강령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혹은 더 나아가 복 받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을 받는 비결, 혹은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도덕과 윤리가 인간에게 좋은 점은 그것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도달하면 칭찬을 받고, 도달하지 못하면 징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킨 사람은 지켜서 자기의 의가 생기고, 못 지킨 사람은 한번 더 지킬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윤리 도덕적인 이야기 일까?
그런데 정말 성경, 그것도 예수님이 지상 사역을 하시는 동안 설교하신 내용이 과연 인간의 의를 세우고, 인간을 가치 있게 해주는 도덕과 윤리, 혹은 복을 받을 수 있는 인과율적인 삶의 방식을 설명하는 것일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성경은 절대로 윤리나 도덕, 혹은 성공법칙, 혹은 마음의 평안을 주는 원리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책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보편종교가 추구하는 구원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윤리 도덕적으로 착하고 반듯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구약의 산을 부수는 산상수훈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백성 즉 천국을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 속 삶의 실체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영원 전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이 역사 속에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책이 바로 산상수훈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 전에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그 언약의 내용이 이 역사와 현실 속에서 실현되고 있는 성도들에게 경험되는 신앙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역사 속에서 복음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로 지어져가는 성도의 삶 속에서 팔복의 내용과 율법의 완성과 참된 금식과 기도와 구제와 진리에 의해 장악당하는 삶의 과정과 내용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문맥
모든 성경의 해석의 시작은 문맥을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성경은 반드시 문맥을 통해서 이해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산상수훈의 문맥이 어디에 있습니까?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장에 있습니다. 그 앞 4장에는 어떤 내용이 있습니까? 4장에서 예수님은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이제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12제자를 부르시며 하나님의 백성을 세워 가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 복음을 가르치시며 전파하며 귀신들린 자, 병자를 고치십니다.
마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 들을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천국복음을 전파하심
예수님이 천국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천국이 이루어지는 현상으로 모든 병과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들이 고침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산에서 가르치심
겉으로 보기엔 참 좋은 일이 일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물리치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래도 많은 군중들이 따라오자 예수님이 제자들만 나오게 한 후 산상수훈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맨 앞에서 들었을 것이고 군중들은 뒤에 있었을 것입니다.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치심
이 장면에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4장에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회복시킨 것은 결국 무엇을 선포하는 것이냐면,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선악과 먹은 아담들이 병들고, 죽고, 귀신들려 고통 받고 있는 이 사망의 가시적 증상이 천국을 통해서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죄와 악으로 죽고 있는 자들이 살아난 것이다.
천국에 대한 오해
그런데 많은 군중들은 천국에 대한 관심보다, 병을 고치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현상에게 집착하게 된 것입니다. 천국은 이런 것인데, 군중들이 그 천국을 오해한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유대인들이 민속 메시아사상으로 오해하고 곡해하였던 천국을 예수님이 다시 설명해주시는 것입니다.
오해된 메시아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이해하였던 메시아사상은 구약적 민족 메시아사상입니다. 그 메시아는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힘과 권력이 있는 자로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여 강력한 메시아 왕국을 다시 세우는 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천국을 현세적이고, 세속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가 세워지는 것이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이것이 보편 인간이 원하는 메시아 관이고, 구약적 메시아 관입니다. 인간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인간의 가치가 인정되고 확장되는 곳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적을 통해서 군중들이 그렇게 이해하였고, 예수님은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천국을 다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산을 부수는 산
인간의 윤리와 도덕이 아닌, 인간의 행위와 자격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역사 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구약의 시내 산, 즉 율법이 주어진 그 산을 부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오르신 이 산은 사실은 구약의 산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율법이 선포된 산이 어느 산입니까? 바로 시내 산입니다. 예수님은 또 다른 시내 산에서 구약의 율법을 부수고, 은혜의 법을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의 역사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어린 양의 피로 모든 장자가 죽는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넙니다. 모세는 이 홍해 도하 사건은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 홍해에서 세상의 힘이라고 상징되는 애굽 군대가 다 죽습니다. 애굽의 군대가 죽은 것은 이스라엘이 힘이라고 생각했던 애굽의 사상 애굽의 가치가 다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광야의 40년의 여정을 보내면서 그들의 애굽의 자아가 다 죽게 됩니다. 옛 세대가 죽고 세 세대가 예수로 상징되는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예수의 출애굽
예수님은 이 이스라엘의 구원의 과정을 그대로 반복하십니다. 예수님이 애굽에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의 시작은 세례로 시작하였습니다. 세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죄악이라 상징되는 물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광야 40년을 상징하는 광야의 40일 시험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상징되는 12제자를 불러 모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약의 율법의 산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산에서 구약의 율법을 부수는 하나님 나라의 신율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산상수훈입니다.
신약의 은혜의 산
구약의 시내산을 상징하는 신약의 산은 두 개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산상수훈이 선포되는 산이고, 두 번째가 변화산입니다. 변화산은 두 증인으로 모형되는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있는 산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결국 신약의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부분을 두 증인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12 사도는 모두 두 증인을 상징하는 교회입니다. 구약에서 모세와 엘리야는 어떤 산에 올라간 자들입니까?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갔고, 엘리야는 호렙산에 올라갔습니다. 시내산과 호렙산은 모두 같은 산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의 변화산과 산상수훈의 산은 모두 구약의 시내산의 언약적 성취입니다.
눅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하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까? 예수님의 별세에 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별세라는 헬라어는 "엑소더스"입니다. 출애굽기가 "액소더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산을 해체함
산상수훈, 변화산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즉 예수님의 별세, 예수님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약의 율법의 산을 부수고, 새 율법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산입니다. 그렇다면 왜 구약의 시내산은 부수어야 하는 산일까요? 구약의 율법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구약 율법의 구속사적 의미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날은 그들이 출애굽한지 50일이 되던 날입니다. 유월절에 출애굽 했고, 유월절 이후 50일이 오순절입니다. 그 오순절에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것입니다.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율법의 핵심
율법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순종하면 살고, 순종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이 율법이 유월절 이후 50일이 되는 오순절에 선포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율법이 선포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그들은 율법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바로 시내산 아래서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과, 그 결과3000명이 죽게 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율법은 모든 인간을 우상숭배자로 만듭니다. 선악과 먹은 보편 인간이 추구하고 형상화하는 신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그 신이 사랑의 신이든, 은혜의 신이든, 화해의 신이든 율법적 구조 아래 있는 인간이 만드는 신은 금송아지입니다. 곧 자신의 “자아의 육욕적 욕망”의 투영물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자 삼천이 살아남
그런데 신약에서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 즉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 선포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3000명이 살아납니다. 구약에서는 율법 때문에 죽고, 신약에서 복음 때문에 살아납니다. 그 사이에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죽어야할 사람들이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사실 구약의 시내 산에서는 3000명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은 다 죽이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죽음을 면하였습니까?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중재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을 죽이지 마시고 차라리 저를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모세는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그렇게 죽어야 할 인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살아난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 사이에 그러니까 시내산과 산상수훈의 산 사이에 누가 있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진짜 생명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산상수훈입니다. 구약과 신약, 율법과 은혜 사이에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난 자들의 삶의 내용이 곧 산상수훈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내용이 기록되어진 문자를 통해 성령에 의해 성도의 마음과 삶 속에 기록되어진 말이고 곧 복음이고, 진리이며, 문자를 넘어선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오직 교회를(성도/살아 있는 말씀) 통해서만 흘러가는 것입니다.
은혜를 설명하는 하나님의 방식
그런데 그 산상수훈을 지켜야 하는 율법이고, 복 받는 비결이라고 가르친다면 또 다시 구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옛 성전은 그것 자체가 부정과 자체 충돌을 가지고 있습니다.(살인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이 어느 때는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살인하지 말라는 것이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
선악과와 생명나무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그 선악과를 먹은 자신을 부정할 때 생명나무가 보이는 것입니다.(선악과를 먹지 말라하신 말씀 안에 있는 자체 충돌 – 먹어서 죽고, 먹지 말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라) 그런데 아담은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생명나무의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선악과를 먹은 아담들에게 그들을 죽이고 해체시켜 생명나무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이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계시록에는 선악과는 없고 생명나무만 있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
천국은 이렇게 선악과를 먹은 아담을 죽이고, 생명나무를 주는 것입니다. 옛 성전을 파괴하여 새 성전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옛 성전으로 돌아가자 그러는 게 말이 됩니까?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이념은 옛 성전, 시내산의 사상입니다. 구약은 모든 종교와 선악과 먹은 인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마지막은 저주입니다.
말4: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라리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그렇다면 신약은 무엇으로 끝이 납니까?
계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신약은 은혜로 끝이 납니다. 산상수훈은 구약의 저주를 부수고, 신약의 은혜를 선포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저주 받은 내가 폭로 당하고 은혜 받은 내가 안식하는 것입니다.) 선악과 먹은 아담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선악판단의 주체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타자를 정죄합니다. 자기 성을 쌓는 자로 살아갑니다. 그들이 바로 저주의 놋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악과 먹은 아담에게 생명나무를 주고, 자기를 지키는 성을 부수고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불 성벽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마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왜 마태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시작을 설명하는데 "입을 열어"라고 했을까요? 구약에서 하나님의 법이 떨어질 때는 "입"이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입은 말이 나오는 곳인데, 그 말은 곧 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가면 예수님이 입의 검으로 교회를 심판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원론과 일원론
구원이란 결국 두 개를(이원론/선과 악, 빛과 어두움,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 나와 너 등) 하나로(일원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은 두 개인데 사물은 하나로 보는 것이고, 귀도 두 개인데 하나의 소리로 듣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입은 하나라고 하는데, 틀렸습니다. 사람의 입도 두 개입니다. 육체의 생명이 나오는 아래의 입과 하늘의 말을 배우는 거듭하게 하는 위의 입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엄마의 아래의 입에서 태어난 모든 인간은 아버지의 입으로 교육을 받고, 훈계를 받아야 진짜 사람, 말을 듣고 말을 하는 생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입으로 교육받음
산상수훈은 아래의 입, 율법의 입에서 태어난 자가 하늘의 입, 은혜의 입으로 교육받아 진짜 생명이 되는 성도의 구원의 현실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산상수훈을 찬찬히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시면서 세상 사람들이 보는 문자와 표피, 율법에만 머물러 있지 마시고, 그 너머에 있는 하늘의 말을(해석되어지는 말) 듣고, 양식으로 마음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해석자 없이 우리 혼자 그냥 읽으면 그냥 문자와 율법으로만 보게 됩니다. 그렇게 읽고, 그렇게 들어서 열심히 율법적 수고를 하면 그 수고 때문에 안식 없는 지옥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영이 진리의 영으로 임하신 것이고, 성경을 해석하는 교사가 세워진 것이고, 그 교사가 이 역사 속에서 목회라는 일을 하면서 아버지의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선포하고 나누고, 그 말로 교제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이 복이 우리의 마음과 역사와 현실 속에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경험하고, 그것으로 양식을 삼고, 그 양식 먹고 나누어가는 언약 아래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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