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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기도 말씀

혼인잔치의 양면성

by 다바르아마르 2020. 4. 21.

19: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모여 

19: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말씀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지 못한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서 벌어지는 장면인데 양상이 바뀐다. 하나님의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데, 잔치는 잔치인데 심판의 잔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말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 두가지가 동시에 벌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을 볼수 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성대하게 치루어지는데 어린양의 신부(아내)로 예비된 자들과 그와는 정반대인자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이러한 혼인잔치가 지구 종말시점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22:1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2:2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22:3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22:4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22:5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22:6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22:7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22:8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22:9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22:10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22:11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22:12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22:13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2절에 나오는 천국이 죽어서 가는 곳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이 땅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가? 그리고 13절에 나오는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리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는 것이 지옥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가? 아니면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 같은가?

 

나는 어릴 때부터 계속 13절에 나오는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는 말 때문에 당연히 이것은 사후 천국이라 생각했다.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은 지옥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지금 이 비유는 포도원 농부 비유 뒤에 나온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포도원 농부 비유는 명백히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었는데 죽이고, 이제 자기 아들 예수님도 보내었는데 종교정치 권력자들이 죽인다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하나님 나라가 이방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 이어지는 비유가 혼인잔치 비유인데, 이 비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보내는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거부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7절을 보면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동네를 불사른다”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분명히 A.D. 70년에 일어난 “로마 군대를 통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사후천국에서 일어나는 일인가?

 

동네를 불사르고,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모두 혼인 잔치에 초대한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새예루살렘에서 혼인 잔치에 초청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혼인 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한 사람이 있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참석하는 것이 명예를 중시하는 이스라엘의 예의였다(21:2).

 

그런데 이 예복을 안 입고 왔다? 이것은 명예를 중시하는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주인에 대한 심한 모독이다. 옷 입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이 자는 옷을 입고 오지 않아 주인을 모독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혼인 잔치에서 쫓겨나고 슬피 울며 이를 간다.

 

지금도 하나님은 혼인잔치에 초대하고 있다. 그때 옷을 입어야 한다. 물론 이 옷은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한다. 즉 혼인하려면 그리스도로 옷입어야 한다. 지금도 혼인잔치는 늘 벌어지고 있다. 언제인가? 말씀이 들려지는 시간이다. 물론 말씀을 듣는 시간은 공적인 예배 때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예배시간이기도하다.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때 그리스도로 옷입지 못하고 무화과 잎으로 만든 옷을 입으면 밖에서 이를 갈며 우는 것이다. 지금도 교회가 성전이라고 모여있지만, 그리스도로 옷입지 못하면 그것은 옛성전이 되어 불타서 없어지고, 밖에서 이를 갈며 울 것이다.

 

교회는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여자이다. 믿음과 진리이신 그리스도는 백마를 타고 온다. 백색은 정결, 순결한 색으로 대제사장이 입는 옷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옷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가 백마를 타고 온다는 것은 정결하고, 순결한 말씀으로 심판을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는 디아데마(왕이 쓰는 면류관,왕관)를 쓰고 온다. 그때 공의(dikaiosuvnh)로 심판하며 싸운다. 공의란 내안에 되어진 의인데,  내안에 그 의(그리스도의 의)가 없으면 심판된다. 분리된다.

 

백마탄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늘의 군대도 백마를 타고 그리스도를 따른다. 그 말은 성도들도똑같이 백마를 타고 싸운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도들의 신분은 말씀들인 것이다. 성도가 말씀들, 생명책이 되지 못하면 심판된다. 그리스도와 똑 같은 존재, 말씀이 되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똑 같은 말씀을 가졌을 때 하나님은 나의 입을 사용하셔서 만국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똑 같은 말씀을 가지게 되는가? 성도들은 자기가 부인되고, 그리스도가 머리되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사는 말씀들이다. 그것을 백마를 타고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존재들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성도들이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으면 새가 몰려온다. 즉 썩은 향기만 나는 죽은 영혼들에게는 거짓 목자들(독수리)만 몰려들어 영혼장사를 하게된다. 그 영혼장사꾼들이 죽은 영혼들을 뜯어 먹고 사는 것이다.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라는 아름다운 향수를 바르고,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며, 백마탄 왕자를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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