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아들을 낳는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목적은 아들을 낳는 것이다. 그 아들을 씨로 설명한다. 과일에도 씨가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씨는 생명이다. 성경은 여자를 교회에 비유한다. 여자는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한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대가 끊기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런 개념을 빌려 구원을 여자가 아들을 낳는 것으로 설명한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 여자에게 아들을 낳지 못하게 하는 장면이 계속 등장한다. 구약에는 바로가 신약에는 헤롯이 그 역할을 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율법의 목적이 무엇인가? 결국은 아들을 낳는 것 아닌가? 그 아들은 그리스도이다. 그 그리스도를 가진 자는 생명이 있는 자라고 한다. 그런데 율법을 통해서 그 씨를 갖게 해주지 못한다. 율법을 도덕으로 말하고, 또 자기 철학으로 말한다. 그러면 생명이 없다. 진리가 없다. 그러면 사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다른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율법은 아들을 낳게 한다. 내안에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리스도를 호라오하는 것이다. 참 존재를 발견하는것이다. 그것이 부활의 목적이다. 그때 우리는 생명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다.
[참고 : ‘호라오(ὁράωG3708)’로 완성이 되어야 한다.
‘호라오(ὁράωG3708)’는 ‘들음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본다는 것이 그저 사물을 인식하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라면
‘들음으로 본다는 것’은 보이는 그 표피 안에 내용으로 담긴 것을 들어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반드시 성도는 보이는 것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보이는 것을 인식하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을 율법이라 하고,
그 보이는 것을 통하여 그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면
그것을 진리라 한다]
성경은 곧 톨레도트(족보,계보)이다. 톨레도트가 야라드(낳다)에서 온 명사이다. 이 야라드라는 동사가 구약에 무려 499번이 사용되었는데 성경은 낳고 낳고 낳고의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여자는 그리스도를 낳아야 한다. 그 그리스도가 교회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그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이다.
성경에서 중요한 패턴이 있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이다. 그 아들이 ‘씨’이다. 아브라함은 그 ‘씨’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아들을 통해 하나님을 배운 것이다.
씨를 뿌리는 이유는 열매 때문이다. 예수는 이땅에 오셔서 씨를 뿌렸다(마13장). 그리고 죽으셨다. 그 이유는 열매를 위함이다.
요12: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의 죽음이 약속되어져 있었다. 그 약속에 의해 죽은 것이다. 한 알의 밀, 즉 예수라는 씨를 심었다. 그 씨, 단수의 아들을 통해 많은 열매, 즉 많을 아들이 생기는 것이다. 열매는 씨의 결과이다. 예수는 한 알의 씨이다. 그 하나의 씨가 죽어야많은 열매(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가 나온다. 그래서 성도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이다. 씨는 열매를 맺는다.
계22:2길(넓은)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고 되어 있는데 원문에는 길이라는 말이 없고 넓은 가운데로 흐른다로 되어 있다. 에덴에서 발원한 강이 네 강의 근원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동서남북 온 세상 사방으로 넓게 흐르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에스겔서에서도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강은 동방으로 아라바로 내려가서 결국은 넓은 바다로 흘러들어가 바다를 소성케하였다고 말씀한다. 따라서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는 넓은 곳 가운데로 흐르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안에 생명수의 강이 흐르면 그것이 내 안에만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곳으로 흐르게 된다는 말이다. 진리의 흘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물댄동산이 되면 그 물은 자연히 물이 필요한 곳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수가성 여인이 참된 남편을 만나자 어떻게 합니까? 이고 왔던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들어가서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진리의 흘림이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이 번역성경에 따르면 강 양편으로 생명나무가 있으니까 최소한 생명나무가 두 그루처럼 보인다. 계시록은 창세기3장의 회복을 그린다. 창세기에는 생명나무가 한 그루 등장한다. 그렇다면 성경의 통일성을 잃는다. 어떻게 된 것인가? 그래서 원문을 보면 생명나무 한 그루이다. 단수이다.
좌우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좌와 우가 모두 한 단어 엔튜텐을 쓰고있다.
1782 ejnteuvqen enteuthen {ent-yoo'-then}
1759와 동일어에서 유래;(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지금으로부터’, (반복된)‘양편에’, 지금으로부터, 한쪽에 <요 19:18>부.from here;
1759 ejnqavde enthade {en-thad'-eh}
1722의 연장형에서 유래;본래적 의미로는 ‘안에’, 즉(장소의)‘이리로’, ‘이쪽으로’ <요4:15>부. here, in this place;
본래 좌/우라는 의미는 ~안에 의미이다.
그래서 바로 생명수 강 안에, 바로 그곳에 생명나무가 있다는 말이다. 영적인 의미를 모르면 강 안에 나무가 있다는 것은 지극히 비상식적이지 않는가? 그래서 좌우로 의역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생명나무는 강 안에 있다. 즉, 생수의 강인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래서 다시 번역하면…,
그 강의 넓은 중앙에 그(생명수의 강) 안 그곳에 생명나무가(단수)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으며 달마다 그 열매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만국의 치료를 목적으로 그 나무의 잎사귀(도 넘겨주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그리고 그 나무들에는 12가지 열매를 맺는다. 왜 하필12열매인가? 바로 아들들을 말하는 것이다. 열매가 열매를 맺는다. 아들이 아들을 낳는다. 부부가 결혼해서 서로 사랑하면 그 사랑의 증거로 아들을 낳듯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혼하면 또 아들을 낳는다. 그 아들이 12라는 열매이다.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이 말씀에서 잎사귀의 용도를 보라! 만국을 치료하였다 라고 한다. 그래서 성경에서 잎사귀는 치료약재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말씀이 만국을 치료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님을 또다시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만국(이방)이 존재하며, 만국을 치료한다.
이것이 곧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이다. 씨의 목적은 열매이다. 성경의 씨는 단수의 씨이다. 그 씨는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성경의 전부이다. 단수의 아들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생명나무가 12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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