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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기도 말씀

두 종류의 씨

by 다바르아마르 2020. 4. 18.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첫번째) 네 씨(제라/단수)크게 성하여(복의 두번째 약속)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바라크(ברך:복)가 두번이나 반복되어 있다. 바라크는 무엇인가? 바로 씨에 대한 약속이다. 바라크는 복과 저주가 함께 담겨 있는 말이다.

 

이스마엘을 약속하기 전에는 하나님은 하늘의 별만 언급하셨다(15:5). 그런데 이스마엘을 낳자 하나님은 하늘의 별과 함께 바닷가의 모래도 언급한다(22:17). 별과 모래를 언급한 것은 그 만큼 씨가 번성할 것이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단순히 숫자가 많아진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별과 모래가 가지는 메타포(비유) 때문이다.

 

[ 38: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별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의인화법이다.

 

[ 24: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별은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 15:8] 그들의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내가 대낮에 훼멸할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놀람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졸지에 임하게 하였으며

[ 6:3] 바다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럼으로 하여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 1:9]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같이 많이 할 것이요

 

포로의 숫자를 모래로 표현하고 있다.

[ 10: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때의 모래는 남은 자와 대비된다. 이러한 모래에는 감추인 보배가 있다.

 

[ 33:19] 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모래)은 훌(lWj , 2342)에서 유래했는데 근심, 고통을 뜻한다.

 

 2:25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으로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인하여[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4: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고하니 왕후가 심히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15:20 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강포자의햇수는 작정되었으므로

 55: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13:8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잡혀서 임산한 여자 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은 불꽃 같으리로다

 26:17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니이다

 45:10 아비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났느냐 어미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하느냐] 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

 

하늘에 있는 것이 별이고, 바다에 있는 것이 모래이다. 성경에서 바다는 어둠, 혼돈, 공허를 뜻한다. 그에 비해 하늘은 하늘짝이다. 즉 하나님과 짝된 존재를 하늘들()이라고 한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별은 이삭의후손, 모래는 이스마엘의 후손을 상징한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간음 사건이 이스마엘을 낳는 장면이다. 아브람과 사래가 진리를 알기 전에는 엉뚱한 사람을 데려다가 짝(하갈)을 맺는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짝(사래)에게  씨를 약속했는데도 말이다. 너에게서 난 자들이 별과 같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아브람은 아들을 얻지 못하자 나에게서 나온다면 굳이 사래가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사래는 하갈을 통해서 자녀를 낳았다. 그렇게 낳은 자식이 이스마엘이다.

 

이스마엘과 이삭 스토리는 율법(이스마엘)과 복음(이삭)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것이 두 증인의 법칙이기도 하다. 성경은 항상 같은 원리로 말하고 있다. 먼저 율법이 오지만 결국 그 율법(이스마엘)을 쫓아낸다. 약속의 자녀가 오면 쫓아내야 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씨(약속)를 약속하셨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씨를 자식으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알아듣는 수준대로 이삭(제라)을 주었다. 하나님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통하여 아브라함을 진리로 교육한다. 하나님께서 늙은 아브라함에게 제라를 약속한다. 그런데 20년이나 넘게 제라를 주시지 않는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자기의 열심으로 ‘아들(제라)’을 얻고자 한다. 일종의 편법으로 후처 하갈로부터 아들을 얻는다. 그것이 이스마엘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제라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하려는 ‘율법’을 상징한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spevrma/스페르마)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9:7)

 

이삭만이 아브라함의 씨인 것은 약속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아들’을 얻기에 불가능한 아내에게 하나님은 ‘이삭’을 선물한다. 그러므로 이삭은 사람의 힘으로 얻은 자식이 아니다. 그래서 ‘이삭’은 은혜의 상징이요, 복음의 상징이다. 여기서도 패턴이 발견된다. 항상 율법이 먼저고 복음이 나중이다. 이스마엘이 먼저이고 이삭이 나중이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누구는 구원, 누구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그런 단순 논리보다 율법과 복음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허락하셨다.

 

이삭하면 몇 천년 전의 인물로 생각하지 말라! 이삭은 약속이다. 율법(이스마엘)이 주어지지 않고 약속(이삭)이 나올 수 없다. 이삭이 나오자 사라가 이스마엘을 핍박하고 쫓아낸다. 율법과 약속의 관계를 모르면 성경은 우스꽝스러운 책이 된다. 이 장면을 단순히 가정분란으로 밖에 보지 못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통하여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한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율법을 통해서 복음을 발견해야 한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해야 한다. 언약을 발견해야 한다. 말씀을 언약으로 받으면 율법의 멍에를 벗을 수 있다. 그렇게 내가 약속의 자녀를 받으면 율법의 자녀를 쫓아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복음을 깨닫는다.

 

그것이 산상수훈의 오른 눈을 빼어 내버리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율법은 우리를 실족케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의 족보는 항상 율법의 자녀 족보가 먼저 나온다. 브엘세바만 해도 그렇다. 하갈의 브엘세바가 먼저 나오고 아브라함의 브엘세바가 나온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아들(보이는 하나님)을 통하여 진리(보이는 것의 실체)를 깨달으라고 주었더니 그 아들(보이는 하나님)을 교주처럼 섬기고 있다면 그것을 간음이라고 한다. 그 순간 다른 남편 즉 바알이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눈과 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이요, 예수일 것이다. 성경을 통해, 예수를 통해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껍데기 예수를 섬기라고 준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한 실체, 즉 성령을 받아 진정한 성전이 되라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의 말씀을 받지 못하고 예수가 가짜 남편 역할을 한다면, 즉 예수를 통해 자기 욕망, 음욕을 품는다면 그 또한 우상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현대교회는 예수로 간음하고 있다. 예수나 보살이나 무당이나 이름만 다를 뿐 성격이 비슷하다. 예수를 통하여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열심히 율법 생활하면, 교회가 옛날의 이스라엘의 성전처럼 되어 버린다. 지옥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게헨나(힌놈의 골짜기)는 성전 옆에 있었. 그곳에서 아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게 하지 않았습니까? 옛날만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까? 지금은 예수라는 아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게 한다. ! ! ! 찾으며 끊임없이 예수로 끊임없이 인신제사를 드린다. 그러한 잘못된 예수, 가짜 남편을 빼내어야만 이러한 게헨나,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다. 가짜 남편이 곧 지옥으로 인도한다.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대적의 문을 차지한다는 것은 히브리 관용구이다. 즉 승리한다는 말이다. 성문을 차지하는 것은 곧 그 성을 정복한다는 의미이다.

 

24: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의 권세라고 되어 있는데, 권세가 문(puvlh)이다. 이게 바로 복이다. 그래서 리브가의 이름은 복과 관련되어 있다. 교회(네 씨)가 음부의 문, 즉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대적은 누구인가? 대적은 멀리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씨를 별과 모래로 비유하셨다. 모래를 언급한 이유가 있다. 모래의 자손, 즉 율법의 자손이 너의 대적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대적이 너의 원수인데, 너의 이웃이 될 것이다. 네가 그 율법의 자손을 이길 것이다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별같이 빛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 개념이 창3:15에 이미 나오고 있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과 똑같다. 약속의 자손은 뱀의 자손과 여자의 자손으로 갈리게 된다. 성경에서 제라(zera)의 가장 중요한 용법은 약속이다. 3:15의 약속은 아브라함-이삭-야곱을 통해서 더욱 구체화된다. 이 약속은 모세, 그리고 다윗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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