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
이때도 육안으로 직접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 말씀/육신인 “아들”을 통하여 보았다는 것이다.
오직 위로부터 오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 그것이 청결한 마음이다. 의가 하나님의 의 이듯이, 하나님의 마음만이 청결한 마음이다.
출24:9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출24:10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ha;r)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rh'fo)하더라
출24:11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여기 출애굽기에 일찍부터 하나님을 본 자들이 나오고 있다. 바로 이스라엘 장로 70명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 그야말로 마음이 청결한 자들로 상징되는 자들이다.
70명의 장로는 바로 그 언약, 그 진리를 가져서 마음이 청결하게 될 우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들은 물리적으로 본 것이 아니다. 호라오 한 자들이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비유로 말하자면 하늘의 구름이 모두 걷히는 것이다. 구름(카르디아)이 모두 걷히면 청명한 ‘하늘(누스)’이 보이는 법이다. 카르디아가 청명해질 때 하늘을 본다. 마음이 청결한 자, 그는 곧 그리스도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 즉 心凊이를 통해 심학규가 눈을 뜬다. 심청인 그리스도를 통해 심학규인 우리는 눈을 뜨게 된다.
요14: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deiknuvw)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빌립이 아버지를 좀 보여달라고 한다. 이때 보여 주세요라는 말은 데이크노(1166 deiknuvw)인데 “증명해 보이다”라는 뜻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증명해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종교인들의 열망이다. 하나님을 보여 주세요! 그러면 믿겠습니다.
요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ginwvskw) 못하느냐 나를 본(oJravw)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oJravw)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deiknuvw) 하느냐
그에 대해 예수께서는 호라오로 대답을 한다. 너는 나를 보았다. 호라오는 영적인 깨달음을 전제한 봄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요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믿음과 보는 것을 연결하고 있다. 이때 보리라도 호라오이다. 믿음으로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나를 깨달았다면, 나를 보았다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 왜 또 아버지를 데이크노 하라고 하느냐? 예수께서 왜 이렇게 도전적인 말씀을 하는가?
요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안에 에이미 하는 것은 사실 장소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짝 개념이다.
아버지와 아들을 따로 따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성경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10:30). 동시에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14:28). 나보다 크다라는 개념이 아버지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말은 나와 아버지는 짝이다. 짝 개념으로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가 짝으로 내 안에 계셔서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간 개념이 아니다. 하나로 산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자체를 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버지를 보여주면 소원이 없겠네~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ginwvskw) (요 14:20)
본다는 것은 곧 안다는 것이다. 누가 말해준다고 아는 것이 아니다. 그 날에는, 즉 성전이 되어 마음이 깨끗해지면 “스스로” 안다. 그 다음부터 고백이 다르다. 나올 수 없는 말들이 나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이” 깨끗해지는것인가?
시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설 자가 누구인가
시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시24: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시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마음이 청결한 자가 거룩한 곳에 선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본다. 그런데 5절에 그가 여호와께 복을 받았다고 한다.
시24: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24: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성전의 문을 열라는 것이다. 전쟁에 능한 여호와가 들어간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이 닫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것이 복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그렇게 성전에 하나님이 들어오니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치고 들어오는가? 바로 말씀이다. 말씀이 공격해서 들어온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 15:1)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15:2)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요 15:3)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깨끗해진다. 사람의 계명으로 배워 인간의 마음은 심히 부패하다. 사람의 계명으로 더러워진 말씀을 이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는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그 말씀이 곧 영이요 생명이다. 마음의 결과는 “말”이다. 우상인 나의 말은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채워진 성전을 뜻한다. 그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니 하나님을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성경은진술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즉 위로부터 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위로부터 씻음과 녹임을 통해 깨끗한 성전이 되는 것이다.
마음이 청결해진다는 말은 결국 “성령”, 즉 깨끗한 말씀과 관련이 있고,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호라오 하게 된다는 것이다. 깨닫게 된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를 보고 느끼고 맛보아 깨달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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