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오늘 본문은 들었다로 시작한다고 했다.
그런데 무엇을 들었다는 말인가? 옛사람들(복수)에게(여격) 말하여 진 것(수동/3/단)을 들었다. 말하여 진 것은 3인칭단수이다. 말하여 진 것은 “살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도 살인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도 살인하지 않는다. 누가 길가는 사람을 칼로 푹푹 찌릅니까? 하나님의 계명이 그렇게유치합니까? 무신론자들도 생명을 사랑한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유치한 말씀하려고 이 땅에 오셨겠습니까? 그 정도 이야기라면 이미 구약의 성도들도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요? 그렇다면 제자들이 그의 말씀이 서기관들과 다르다고 느낄 하등의 이유가 없다.분명히 지금 기존의 가르침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제자들이 혼란스러운 것이다(마7:29). 예수께서 율법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면 예수께서 나의 멍에는 가볍다는 말할 수가 없다.
너희가 살인하지 말라는 것을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는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계명의 “진의”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살인의 진의’는 무엇일까? 계명의 완성은 이웃사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살인에 담긴 이웃 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그들이 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말은 어디에 나오는가?
출20:13 [살인하지] 말찌니라
바로 십계명에 나오는 표현이다.
jx'r:(7523, 라차흐)
살인하다, 죽이다
라차흐(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살인하다, 살해하다, 죽이다'를의미한다.
라짜흐는 구약에 47회 사용되는데 출20:13에 처음 등장한다. 죽이다라는 단어는 하라그(gr"h)가 있는데 창4:8부터 등장하고 구약에서 168회사용된다. 이보다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라카인데 500회나 사용된다. 라카는 무엇인가 타격을 가하여 죽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가장 일반적인 것이 나카(5221 hk;n:)이고, 그 다음에는 하라그, 그리고 라짜흐이다. 하라그가 동물을 죽이는 것까지 포함하는데 비해 라짜흐는 “인간”에게만 적용된다. 따라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도살하지 말라고 해석을 함으로서, 살인하지 말라가 아니라 희생제사 드리지 말라! 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5407 foneuvw phoneuo {fon-yoo'-o}
5406에서 유래;‘(~의) 살인자가 되다’, 살인을 하다 <약 2:11>동. to murder;
헬라어 포뉴오는 구약에 55회 등장하는데 주로 라짜흐와 나카를 이 포뉴오로 번역하고 있다. 신약에는 12번 사용된다. 죽이는 대상을 보자!
마 23: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약 5:6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한번도 동물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주로 인간, 그것도 “선지자를 죽이는 것”에 쓰인다. 그리고우는 절대 부정으로서 엄격한 금지를 뜻한다. (참고: 한편 마가, 누가, 야고보는 부정 과거 추가어와 함께 메(mhv-3361)를 사용하여 고급 헬라어를 따른다)
너희는 십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들었다. 너희가 들은 것은 “살인하면 심판을 받는다”는것이다. 너희들은 그렇게 들었다는 말은 무엇인가 잘못 알아 들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 다음 구절이다.
마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2절 말씀을 볼 때,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살면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화를내면 심판을 받게된다면(미래)도대체 심판 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또한 이 멍텅구리(라가)야! 라고 말하는 순간 법정에 끌려간다면 아마 이 나라에는 교도소가 모자랄 것이다. 그리고 이 바보(미련한 놈)야 말한다고 지옥불에 들어간다면 모든 사람이 지옥불에서 지글 지글 끌임을 당할 것이다. 더구나 예수님은 화를 내지 않았는가? 예수님은 또한 욕을 하지 않았는가? 예수님도 분을 내며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를 했다. 예수님은 나의 멍에는 쉽다고 했다. 더 큰 멍에를 씌운다는 말인가? 이렇게 문자적으로 잘못 들으면 또 너희는 이렇게 들었다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의 진의를 들어야 하겠다.
그러나 “나는”으로 시작한다. 너희와 나가 대조되어 있다. 너희가 들은 것과 내가 말하는 것이 다르다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러나”가 들어가 있다. 번역은 그러나(de)가 빠져있는데 이 그러나가 중요하다. 앞의 것과 반대될 때 쓰는 것이 데(de)이다. 앞에서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성취하러 왔다고 하셨다.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차원이 다른 의”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제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차원이 다른 십계명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다. “차원이 다른 살인”이다. 너희는(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말씀을 배운) “살인하지 말라”라는 것을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로 듣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계명의 껍데기이다. 그 말씀을 한 “진의”에 대해서 지금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심판의 기준이 살인하지 말라인데 22절에는 “심판을 받는 것”과“공회에 잡혀가게 되는 것”,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는것”을 모두 심판의 개념과 같은 개념으로 말하고 있다. 심판은“분리”를 뜻한다. 즉 아버지와 분리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회에 잡혀가는 것은
4892 sunevdrion sunedrion {soon-ed'-ree-on}
4862와 1476의 어간의 합성어에서 파생된 단어의 중성; ‘공동의회’, 즉(특히) 유대인의 ‘산헤드린’공회, (유추)공회 <막 13:9>중명. Sanhedrin;
1476 eJdrai'o" hedraios {hed-rah'-yos}
hezomai<헤조마이>(‘앉다’)의 파생어에서 유래;‘앉아있는’, 즉(함축적으로)‘움직일 수 없는’, 고정된, 튼튼한 <고전 7:37>형. to sit firm;
명사 쉬네드리온(Hdt. 이래)은쉰(sun, 4862: 함께, ~와 함께)와 헤드라이스(1476,앉아있는)에서 유래한 말로 “함께 앉아있는”이라는 뜻이다.성경에서 앉아 있다라는 말은 왕적 개념이다. 앉아서 무엇을 하는가 하면 바로 심판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산헤드리는 입법기관이었다. 요세푸스에 보면 쉬네드리온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의 '최고의회'를 의미했다. 산헤드린은 71명의 의원, 즉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 중 지도급 인사들로 구성되었으며, 의장은 대제사장이었다.
산헤드린은 최고의 유대인 의회로서 모든 정치적, 종교적 일들을 관할했다. 산헤드린의 권한은 법률상의 권한은 남았으나 사실상 법 집행은 통치자의 몫이었다(참조: 막 6:17-29; 행 12:2). 주후 66년 가을, 유대인의 반란이 시작되어 이 총독 정치가 무력에 의해 종식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유대 법정이 사형을 언도하고 집행할 수 있었다. 열심당원들이 예루살렘에서 그들의 공포 통치 동안에 이 권리를 무시무시하게 사용하였다. 그러나 로마 총독들이 유대를 다스리는 기간 내내헤롯의 통치 아래 실시된 바와 같이, 산헤드린은 사형을 가할 권리는 박탈되어 있었다.
요18: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본문에 따르면 사형 선고는 총독이 내릴 수 있었고 유대인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었다. 산헤드린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입법부이다. 당시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있지 않아 사실 국회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산헤드린에 끌려가는 것은 판결을 위한 것이다. 판결을 받는 것이 심판의 개념이다. 그런데 욕좀했다고 산헤드린에 끌려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무슨 말인가?
1777 e[noco" enochos {en'-okh-os}
1758에서 유래;(조건, 형벌, 혹은 허물의)‘죄가 있는’, 위험이 있는, 복종하는 <마 5:21;히2:15>형. liable, under obligation;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 에노코스에 의하여 심판과, 공회와, 지옥 불을 연결하고 있다. 즉 심판과 공회와 지옥 불을 같은 개념임을 알 수 있다.
1758 ejnevcw enecho {en-ekh'-o}
1722와 2192에서 유래;‘붙잡히다’, 즉 ‘함정에 빠뜨리다’, 함축적으로 ‘원한을 품다’, 뒤얽히게 하다, 대항하여싸우다 <막 6:19>동. to hold in, to be angry;
2192 e[cw echo {ekh'-o}
어떤 시제에서만 사용된 scheo<스케오>의변형을 포함함;기본동사, ‘붙잡다’(다양한 용도로 사용, 문자적으로혹은 상징적으로, ‘직접’, 또는 간접으로 ‘소유’, ‘능력’, ‘연속’, ‘관계’, 또는 ‘조건’같은), ‘소유하다’, 동반하다, 간직하다, 보관하다, 붙잡다 <빌 2:29;히 6:13>동.to hold;
에노코스는 붙잡히다. 얽메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에네코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에네코는 소유하다라는 에코와 안이라는 엔이 연결된 것인데 [안에 소유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것으로 완전히 붙잡히고 얽메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회에 잡혀가게 된다라고 되어 있는데 공회를 (안에)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심판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고, 지옥 불도 소유하게 되는것이다.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간다는 것보다 존재 자체가 지옥 불이 된다는 개념이다. 심판은 (아버지와) 분리를 뜻하는데, 그 분리의 고통을 지옥불로 표현하는 것이다.
에노코스는 완전히 얽메이는 것이다. 그 자신 안의 공회가 설치되고, 그로 인해 완전히 묶여 꼼짝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막 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성령을 훼방하면 영원한 죄에 묶이는 것이다. 영원히 과녁에서벗어나는 것이다.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그것은 종 노릇하는 것이다. 묶여 있고, 얽매여 있는 것이다. 그것을 지옥 불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할 때도 똑같이 에노코스를 쓰고 있다. 따라서 지옥불을(목적격/에이스) 그안에(엔) 소유(에코)하게 되는 것이다. 즉 그 사람의 속이 곧 지옥불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옥이나 천국은 그 사람들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안이 지옥이냐 천국이냐는 무엇에 달려 있다고 하는가? 그것은 바로 그 형제(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내가 어떻게 받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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