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14-17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위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의 신분을 아들로, 양자로, 자녀로 3가지로 진술한다.
양자의 영은 프뉴마 휘오데시아스라는 단어인데 양자는 휘오스라는 단어와 티데미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아들이 된”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양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있는 자”이다. 누구를 말하는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따라서 양자의 영이 아니라 아들의 영, 즉 그리스도의 영이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아들이 된다는 것은 성경의 한결같은 진술이다. 그리고 근접 문맥에서도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기술하고 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아들이 되어 아버지로 부른다. 그래서 본문은 “아들의 영”을 받았으므로 라고 단순하게 번역하면 된다.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본문의 아들도 동일한 휘오데시아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이 본문은 그럼 왜 양자로 번역을 하지 않았을까? 왜 어떤 곳은 양자로, 왜 어떤 곳에는 아들로 번역을 해야 하는가? 무슨 근거로? 헬라문화에서 양자 문화가 있었다. 그리고 단어에 그런 뜻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성경기자는 그 문자를 빌려 썼기 때문에 아들 개념으로 쓴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번역한 사람들이 헬라 단어 개념으로 번역했던 것 같다.
그리고 8장 14절에서는 아들이라고 하고, 15절에서 갑자기 양자라고 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양자 그 보다 훨씬 깊다. 따라서 일단 양자라는 개념은 이제 버리자!
이제 자녀에 대해 알아보자!
자녀로 번역된 헬라어 테크논은 아이, 자식이라는 뜻인데, 70인역본에서는 대부분 벤(아들, 손자, 어떤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단어의 역어이다. 아들을 뜻하는 휘오스도 벤의 역어이다. 따라서 테크논과 휘오스는 본질상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테크논을 “자녀”로 번역하여 아들과 딸이라는 인상을 받지만 테크논은 보통 “성에 관계 없이” 자식, 아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휘오스와 차이는 무엇인가? 휘오스에 비해 테크논은 부모와의 친밀하고 사랑의 관계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휘오스가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많이 쓰였다면 테크논은 부모의 애정이 담긴 단어이다.
엡 5: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테크논)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사도바울은 휘오스와 테크논을 같이 사용한다. 그래서 롬8장 14~17절에 아들과 자녀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그에 반해 요한은 주로 테크논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부모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테크논)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테크논)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결론은 자녀(테크논)는 아들과 딸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성별을 구별하고자 쓰는 단어가 아니다. 특별히 테크논은 부모의 사랑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휘오스와 테크논 모두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천국은 성의 개념이 사라진다.
마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아들이라는 단어 조차도 ‘남자’라는 개념을 넘어선다. 성경의 아들과 아버지는 세속적인 아들과 아버지의 개념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나타남이기 때문이다.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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