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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새벽기도 말씀

십일조 잘 내면 대박납니까?

by 다바르아마르 2020. 4. 9.

[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하나님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나를)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주를)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3: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나를)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스라엘은 십일조를 잘 드렸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들은 나의 규례를 떠났다고 말씀하셨다. 그 예로 너희들이 십일조를 도둑질하였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아니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떠났으며 또 우리가 언제 십일조를 도둑질하였습니까? 하고 묻는 장면이다.

 

개역 개정에는 하나님의 것,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다라고 번역되어 있으나 원문은 ‘하나님을’ ‘주’를 도적질 하였다고 분명히 되어 있다. 어떻게 하나님을 도적질 할 수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을 도적질한 예로 십일조와 헌물을 가지고 말씀하신다. 지금 하나님은 십일조와 헌물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십일조의 원어는마아쎄르(4643 rce[}m')이다. 이 마아쎄르는 아싸르(6240 rc;[;)에서 유래했다. 아싸르는 ‘십’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마아쎄르(4643 rce[}m')를 파자하면 말씀+십이다. 이것은 십계명을 뜻한다. 멤을 장소로 볼 수도 있다. 십의 장소이다. 십이 있는 장소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법궤이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문자를 제대로 알지 못해 가르치고 보여줄 필요가 있어 성전으로 만든다. 마아샤르는 성전이다. 그것도 법궤이다.

 

헌물의 원어는 테루마(8641 hm;ruT])이다. 헌물은 올려바친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올려바친다는 것인가? 제사개념에서 쓰인 것인데 제사란 도대체 무엇인가? 희생제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희생제사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동물과 나의 동일시이다. 동일시 된 동물은 곧 나다. 그래서 동물이 죽는 것은 곧 내가 죽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죽이는 것이다. 그것이 헤렘이다. 나를 진멸하는 것이다. 자기부인이다.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진멸할 때 성전은 완성된다.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해서 바치는 것이 헌물이라 한다. 그래서 십일조는 가나안에서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십일조의 완성은 마아세르, 즉 법궤이다. 법궤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전된 나(새 하늘과 새 땅)’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로 그 하나님과 하나되면 그것이 십일조이다. 하나님의 선물인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으면 그것이 곧 십일조요 헌물이다. 그러면 어떠한 일이 생기는가? 하늘 문이 열리고, 나의 창고가 얼마나 풍성해 지겠는가? 그래서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다.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의 십(계명)을 마음에 온전히 두면, 그분의 처소가 된다. 본문에서 창고에 들인다는 것은 수장절을 말하는 것이다. 내안에 진리의 양식이 가득하면 내가 수장절이 된다. 그럴 때 내안에 있는 양식을 쌓을 곳이 없어 나눠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복이다.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진리를 부어 주신다는 말이지, 돈을 열심히 내면 주식 대박내준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십일조의 실체는 그리스도이다. 구약의 이러한 그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것이다. 모든 진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예수님께서 죄로 죽은 인류의 대표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첫 열매로 하나님께 바쳐진다. 우리가 드려야할 자리에 예수께서 속전으로 드려지는 십일조가 되셨다. 우리의 모든 십일조를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일조가 되셨다. 그때 그리스도가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러한 예수가 선물(테루마: 헌물)이다. 그 선물을 받기만 하면 된다.

 

십일조는 광야에서 할 일이 아니다(12:1-14). 십일조는 약속의 땅과 관련이 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라는 것이다. 가나안은 오늘날 천국의 그림자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해도 십일조를 바로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 족속을 먼저 멸하고 드렸다. 가나안 족속을 멸했다는 것은 이제 내가 진리의 말씀(젖과 꿀)을 낼 수 있다는 말이다. 내 안의 열매는 그리스도, 즉 말씀이다. 하나님은 바로 깨끗한 말씀이 있는 그 성전에만 거하신다. 그런 법궤가 된 자들, 그러한 십일조를 받는다.

 

말라기는 이렇게 십일조가 ‘하나님 자신’인지도 모르고 흠이 있는 제물로 눈속임하여 ‘내 할 일 다했다’라고 생각한 구약 백성에게 던지는 메시지였다. 그래서 ‘나의 것’이 아닌 ‘나’를 도적질했다고 말씀하셨다. ‘를 도적질했다.  그리스도를 도적질했다. ‘하나님을 도적질했다. ‘말씀을 도적질했다. 그리스도가 십일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