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경에서 진리를 찾고자 한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일까? 이 질문을 하면 수많은 답을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말하고 있다.
요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즉 아버지 말씀이 진리이다. 그리고 그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즉 어떤 행위, 행동, 제사의식 같은 것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왜? 아버지 자체가 진리요 거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은 성경책 뿐만 아니라 천지 만물을 통하여 말씀한다. 천지만물은 진리를 위한 시청각 교재이다.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준 세상의 모든 것이 말씀이다. 그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알면, 그것이 거룩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다. 그 보이지 않는 영을 알 수 있는 길이 그리스도인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 이 보이는 것의 실체가 바로 그 영이신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이 진리이다. 하나님이 진리요 생명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다. 세상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하여 계시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세상 만물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발산하는 극장이요 그림이다. 그 심볼의 정점은 예수이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이렇게 세상 전체에 자신의 뜻과 소원을 담아 놓았다. 세상 전체가 아버지의 기도이다. 그런데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 감추어 진 것을 드러내는 것을 계시라고 한다. 계시를 헬라어로 아포칼립시스(602)라고 하는데 덮개를 제거하다라는 뜻을 가진 아포칼립토(601)에서 왔다. 그래서 아포칼립시스는 베일을 벗김, 덮개를 제거함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어떤 감추어진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진리라고 한다. 그때 나는 진리를 알았다고 하는 것이다. 베일에 쌓인 천막을 벗겨내면 우리는 실체를 볼 수 있다. 메타포(상징,은유,비유)를 배운다는 것은 베일을 벗기는 작업이다. 덮개를 제거하는 작업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메타포를 배우는 이유이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다. 이 법궤를 제거하면 그 안에 실체가 담겨있다. 그 실체가 바로 10언약이다. 십계명도 마찬가지이다. 십계명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십언약이다. 그리고 그 언약의 결국은 “사랑”이다.
아버지의 진심은 사랑이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한다. 내가 무엇을 잘해서 이뻐해주는 아버지가 아니다. 진리로 나를 거룩하게 하는데, 거룩이라는 것은 구별이라는 뜻이다. 즉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지기 때문에 구별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나를 세상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긴다. 그 나라에서만이 진정한 자유와 안식을 누린다. 그러므로 메타포를 배운다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 진심,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다. 세상 만물에 담긴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된다.
성경은 수많은 메타포로 되어있다. 이 메타포는 실체를 담고 있다. 메타포를 배우는 이유는 단순히 많은 것을 알고자 함이 아니다. 오직 그 하나를 알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하나를 알면, 그 진리로 인해 자유를 얻게 된다. 그런데 그 하나가 너무나 크고 깊고 넓다.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는 ‘하나’이다.
밖에 눈이 내린다. 눈은 내리는 눈마다 결정체가 다 다르다. 수백조개도 넘는 눈의 모양이 다 다르다. 그러나 눈은 육각형이다. 눈도 메타포이다. 눈안에 담긴 마음을 보면 이제 눈은 더 이상 눈이 아니다. 아버지의 마음이다. 말씀이다. 이제 아버지의 속삭임이다. 그 속삭임 안에 나는 춤을 춘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다. 거룩이다.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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